8월 18일 12시 30분,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된 대항기억과 몸짓의 재구성 단편 프로그램에서는 총 5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설경숙 모더레이터의 진행 아래 이어진 GT 시간에는 네마프2018의 개막작 중 하나인 <닫힌 말, 열린 말>의 차미혜 감독이 참석하여 관객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닫힌 말, 열린 말> 이라는 제목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차미혜: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요.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장소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 ‘교화장’ 이라는 공간에 끌렸어요. 수감자들의 의식을 전향하기 위한 공간으로 마치 어떤 무대처럼 홀과 단이 있는데, 수감자들은 일방적인 언어들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장소였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수감자들이 듣게 되는 언어들의 성격이 일방향적이고, 강압적이고, 수동성을 요구한다는 점에 관심이 갔어요. 제목에서의 ‘말’은 이곳에서 수감자들이 하고자 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이라고 생각했고, 몸의 언어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몸의 언어가 사실은 발화될 수 없던 언어들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닫힌 말이라는 말은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이 장소의 형태들에 대해 유동적으로 고민해보고자 한 흔적이 엿보이는데요. 유동성과 몸의 언어, 대화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차미혜: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퍼포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느꼈던 것들에 대해 들어보고, 제가 그려졌던 이미지들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퍼포머들과 나눴던 대화 중 인상적인 부분이 여자 퍼포머분이 화려한 천창을 보면서 ‘천장을 걷고 싶다’ 는 이야기를 했었던 부분이었는데요. 그런 문장들과 제가 생각했던, ‘공간성의 딱딱함을 비틀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이 내용을 이미지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창고 같은 공간들이 몇 있는데, 그 안에 창고의 자재들, 망루나 벽돌조각 같은 것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불러오고 싶었어요. 흔들리고 비틀리는 물건들을 소재로 무용수들이 그걸 움직여보고, 비틀림을 일으키면서 운동성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1 : 말소리를 철판이 내는 소리로 생각했는데 왜 철판을 선택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소통하는 교화장과 형무소에서 나오는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왜 장소를 서대문형무소로 선택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차미혜: 철판은 아니고, 두꺼운 종이, 비치는 알루미늄 종이인데, 일단 소재 자체는 처음에 뭔가 ‘반영되는’ 소재를 떠올렸습니다. 천장의 이미지를 바닥에 깔고, 반영되면서 공간성이 움직이길 바랬어요. 소재를 선택해서 붙여보고, 퍼포머가 자유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보고 했어요. 퍼포먼들에게 제가 요구했던 것들에 소리적인 부분도 있었어요. 물질이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 혹은 물질 자체에서 내는 소리, 삐걱거리고 끼익거리는 소리 자체를 무용수들이 잘 써줬으면 좋겠다, 이게 한 요소가 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어, 소리, 비명이자 울림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자 했고, 그걸 해석하는 건 다양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교화장에서 있을 법했던 언어들이 다른 형태로 변주되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 공간에 있었을 분들의 형태를 상상할 수도 있고, 지금과 만날 수도 있는, 그런 소리와 움직임이 나타나기를 바랬습니다.
'왜 형무소여야 했는가?'는 오히려 형무소가 나를 부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 자체는 형무소 측에서 제안을 해주셨는데, 문화의 날에 형무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서 미디어작업을 행사의 일환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제안이었어요. 저희는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본 것인데 관람객처럼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하게 공개되지 않은 공간도 천천히 볼 수 있었고 자재들이나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거운 마음에 작업할 자신이 없었고, 에너지가 강하고 소재로써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무용수들과 함께 다시 가서 감옥의 공간 안에 있는 인물들의 상태에 접근하고, 몸으로도 표현도 해보니 이미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운드 이야기를 좀 더 덧붙이자면, 완전히 소리가 없는 부분이 있고 충격을 주는 듯한 소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계속 변형되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차미혜: 시작은 어쨌든 몸과 언어들이었어요. 그것을 어떤 이미지, 움직임, 소리로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러던 중 구두언어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걸 어떻게 작업으로 나타낼지는 처음부터 정하지 않았고, 남자퍼포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공간이 일제시대 이후에도 감옥의 역할을 했던 곳이고, 누군가는 책을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나누게 되었어요. 그때 박완서 작가님이 형무소 앞에 살면서 책을 썼다는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고 작가님의 글 중 공간을 이루는 것을 사람과 비교한 부분이, 짧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느슨하게 작품과도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구절이 맘에 들었고, 퍼포머들이 그 책을 읽으면 어떨까 생각 해보았을 때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 발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 부분을 읽는 것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록 | 이혜은, 전동현 루키
사진 | 전해라 루키
8월 17일 오후 4시, 문화비축기지 T6 원형회의실에서 VR <가상현실을 통한 예술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아티스트 토크가 열렸다. 이 토크에는 <공간소녀>의 최민혁 감독, <안중근>의 한재빈 감독, <사라진 목소리>의 심혜정 감독 그리고 <동두천> 프로듀싱에 참여한 강지영 미디어 아티스트 겸 단국대 교수가 함께 했다. 관객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품과 VR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최민혁 : <공간소녀>는 공간에 대해서 특별한 감각을 일으킨 소녀의 집에서 일어나는 판타지, 소녀와 공간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여 제작했습니다. VR에서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레임을 확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롭게 공간을 창조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재빈 : 체감형 영화를 위해 만들었고 우주나 실제 체험하기 어려운 작품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적 의의의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심혜정 : 저는 사실 VR매체를 알고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거꾸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에 적합한 매체를 찾다 보니까 VR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구제역과 관련된 기억에 관한 작업이어요. 어리고 약한 생명이 죽어가면서 그러한 기억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었습니다.
강지영 : 저는 <동두천> 영화 프로듀싱에 참여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VR 아트 영화는 많은 장점들이 있는데 관객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1인칭 시점 등이 특히 매력적 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1 : VR 작가님으로서, 이 시대에 VR 예술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 VR 상영 방식이 영화관처럼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보는 방식이 아니라 개개인이 보는 것인데 그것이 익숙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이 한계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술 갤러리에서 진행을 할 때에는 그런 방식이 효과적이었습니다.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오지 않으므로 한 분 한 분 개인 스마트 폰을 통해 체험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VR은 특정 형식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최민혁 : VR이라는 매체가 상당히 재밌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둘러보고 걸어다닐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의 몸이 객석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경험하는 것들을 VR로 어떻게 새롭게 표현할 지가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한재빈 : VR의 특성이 ‘혼자 놀 수 있는 놀이’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후체험, 황천강 등 체험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VR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강지영 : 기존의 영화들에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점들을 1인칭으로 몰입감 있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동두천> 영화 만들 때 처음 시작했던 아이디어 시작이 윤금이씨 사건이었는데, 기존의 매체들이 한 것 처럼 폭력성, 반항적인 성격들을 지니기 보다는 여자의 시점에서 표현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관객2 : 체험을 지양하고 예술로서의 의미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체험이라는 요소가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이 말하는 예술로서의 체험과 기능으로서의 체험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강지영 : 체험형 VR 일회성 체험과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관객들이 그 작품 안에 일그러지는 확장된 경험 이나 체험이 있어요.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오락성을 띈 체험들은 사실 직접 경험한 느낌을 들게 하면서 몰입에 더 집중한다면 후자는 메시지나 스토리에 더 집중을 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3 : 저도 최근에 VR작업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VR 매체라는 게 다른 매체들과는 다르게 관람객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 해야 하고 작가는 시선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너무 어려웠는데 화질 개선 문제 또는 360도 촬영이나 밑에 카메라에 삼각대가 보인다는 점 등 기술적인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심혜정 : 저 같은 경우에는 기술적 한계들을 이용한 것 같아요. 구덩이 사이즈를 작게 했지만 광각과 화질이 정확하게 안 나와서 오히려 커보이게 잘 나왔고, 물 속에서는 바위 틈에 카메라를 넣어서 촬영했습니다. 가려진 사각을 만들면 내가 나오지 않게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실사 영화를 만들려고 하면 그때는 또 다른 고민들이 있을 것 같네요.
한재빈 : 포토샵 간단히 할 수 있으면 트라이포트 그림자 같은 것들을 살짝 지울 수 있어요.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최민혁 : VR은 기본적으로 리얼타임 스토리텔링이에요. 리얼 타임 게임 엔진을 사용하면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지영 : VR영상을 하고 싶다면 어떤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나오는지 주의깊게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4 : 여태까지는 스토리텔링과 기획 얘기를 했는데 배우와의 소통이나 다른 스탭 등 전체적인 디렉션을 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합니다.
최민혁 : 공간에 제작에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소녀의 방이 계속 변주가 되는데 그 공간들이 소녀가 지나갈 때 어떻게 변해야 되는지 디자인 팀이랑 그 구조를 만들어 놓고 배우에게 공간을 보여주고 직접 걸어보는 리허설을 했어요. 이런 부분이 기존의 영화와 다른 작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강지영 : VR영화도 일반 영화와 똑같이 굉장히 많은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특이점은 내가 나오면 안 돼요. 그래서 리허설이 더 중요하고, 그런 점 빼고는 일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관객5 : VR 공간이라는 것은 변형이 쉽게, 다양하게 되는 공간인데 그런 VR 공간에도 특별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최민혁 : 내가 상상력을 발휘한 가상현실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VR 공간의 특별한 공간의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심혜정 : 매체적 경험이 바뀌면 기억하는 방식도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꿈을 꾸는 것도 사실 제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공간에 대한 기억 방식들이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재빈 : 2D영화처럼 VR공간도 미술을 합니다. 연출의도나 작가의도를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지영 : 자연스러운 점들이 컨택이 되지 않아 의도한 바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동두천>에서도 마지막에 킬링 포인트를 못 보는 관객들이 있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향이나 관객마다 다른 영화를 관람한 느낌 역시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록 | 이혜은, 이혜진 루키
사진 | 지서영 루키, 최창민
최민혁 감독은 제 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버추얼 리얼리티 아트 기획전X’를 통해 <공간소녀>를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최민혁 감독은 현재 CJ VR/AR Lab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간소녀>로 세계 최대 IT·엔터테인먼트 박람회 '2018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의 가상영화 섹션에 초청되어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아티스트 토크 <가상 현실을 통한 예술의 확장>이 끝나고 최민혁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번 제 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영화과를 나오긴 했지만 뉴미디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스마트폰 인터랙티브 영화도 만들고 계속 작업을 했었거든요. ‘언젠가는 뉴미디어 페스티벌에 출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초청해 주셔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작품의 기획의도가 궁금합니다.
VR이라는 매체가 단지 프레임의 확장이 아니라 기존의 영화의 요소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중에 프레임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체험하는 공간이나 무대가 달라지고 관객이 이야기 속에 존재함으로 인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극 중 인물과의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고, VR이라는 매체에서 영화의 요소를 재매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특별히 공간에 주안점을 맞춰서 했던 작업이구요. VR안에서 구현되는 영화적 공간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감각을 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을 때 ‘자기 스스로 변형되는 공간이면 어떨까’ 조형적으로 변화되거나 그래픽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지만 ‘인물의 감정에 연결이 되어서 변하면 어떨까’에서 출발하게 되었어요. 이야기보다는 매체에 초점을 맞춰서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소녀>를 만드는데 모티브가 된 작품들이나 구성 형식을 만들게 된 출발점이 있나요?
매체에 대한 생각과 관념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봤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작품은 있지만 모티브가 된 작품은 없어요. 스크린에도 어울리고 VR에도 어울리는 멀티 플랫폼에 대한 기획으로 시작했어요. 두 매체가 스크린을 확장하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공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구요.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볼 만한 관전 포인트가 많은 것 같아요. 마지막에 소녀가 가방에 들어간 장면이 어떤 의미를 담고있는지 궁금합니다.
공간들이 소녀의 노스텔지어를 보여주잖아요. 의식적인 기억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던 기억을 보여주는 것인데, 소녀의 기억과 관련된 오브제를 통해서 판타지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챕터에 가방 안에서 살았다는 설명도 있고, 가방도 어떻게 보면 작은 공간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방을 넣게 되었어요. 기억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오브제일 수도 있고, 가방이라는 또 하나의 공간에서 소녀가 살았다는 설정에서 온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작품의 배경이 다채로운 색상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림같은 배경에 소녀만 실사 인물인 점이 인상적인데, 연출 의도가 궁금합니다.
배경을 작업한 툴이 ‘틸트 브러쉬’라는 툴인데, 공간을 딱딱하고 볼륨이 있는 공간처럼 보여주지 않고 흐물흐물하게 보여주는 대신 컬러는 선명하고 브러쉬의 느낌이 살아있는 게 장점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실사 인물의 톤을 일부러 누르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실사인물의 의상이나 그런 것을 잘 어우러지게 하려고 노력을 했었죠.
소녀의 옷 색이 바뀌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공간이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집이 계속 변주하는 컨셉이에요. 다른 방으로 가는 것 같지만 자신의 방이 변형된다는 컨셉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 공간이 보여주는 무드나 분위기에 맞춰서 옷도 다르게 설정한 것입니다.
작품에 대한 얘기는 마치고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해요. 감독님께서는 모바일 인터랙티브 영화, 다면 상영관 프로듀서로 활동하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을 시도하시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영화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찾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와 관객이 맺고 있는 시공간적인 관계가 기술에 의해 상당히 바뀌는 시점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고 어떤 자세로도 볼 수 있구요. 영화가 재현한 가상 세계와 우리가 맺는 관계가 상당히 급변하는 시대잖아요. 단지 수용의 형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인터페이스가 바뀌면 재현된 가상세계의 감각이나 내용도 바뀌잖아요. 그 언어를 찾고 제시하고 싶은 거죠. 예를 들면 스마트폰 인터랙티브 영화에서는 터치라는 인터페이스가 들어갔을 때 스토리텔링이 바뀌는 것을 실험해보고 싶었고, 스크린X는 3면으로 펼쳐진 스크린을 통해서 재현되는 영화적인 세계라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영화라는 공간이 독특한 3면 영화관으로 재현됐을 때 그 공간의 경험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재미있었구요. VR에서는 훨씬 더 새롭게 탐색해야하는 언어가 많지 않을까 해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CJ에서 VR/AR Lab 프로듀서로서 활동 하고 계신데 AR과 달리 VR 작업 만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현실은 조금 보여주고 가상을 많이 보여주는게 가상현실이고 현실을 많이 보여주고 그 위에 가상을 올리는게 증강현실 이잖아요. 당연히 가상을 많이 보여주는 게 재미있죠. 근데 중요한 건 우리가 VR/AR 이렇게 정의하는 것보다 앞으로는 이 스펙트럼이 주는 풍부함을 누리게 될 거에요. 쉽게 말하면 VR/AR을 바꿔가면서 할 수도 있고, 또 MR이라고 해서 AR처럼 현실의 이미지가 올려져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책상에 고양이가 올라왔다 내려가는 식으로 훨씬 더 현실과 가상이 믹스가 되는 형태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거든요. 그런 모든 가능성이 재미있죠. 그거 대비 ‘VR이 진리야’ 이렇게는 말씀 못 드릴 것 같아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상의 경험들이 이러한 스펙트럼에 맞춰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인식 하에서 ‘나는 어떤 작업을 할까’의 차원인 거죠.
‘씨네21’에 작성하신 가상현실에 대한 기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VR이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예술 형식 혹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VR이 영화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다른 영역이고 쉽게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가 힘든데,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관객의 몸이 객석에서 해방되어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거에요. 객석에 앉아서 거리를 두고 경험했던 관객의 신체가 바뀌는 경험인 거죠. 내가 둘러볼 수 있고 걸어갈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이런 가상 경험이 가능해지니까 그 점이 중요하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관객이 처음으로 다른 관객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에요. VR은 쉽게 말하면 영화와 컴퓨터가 만난다고 볼 수 있잖아요. 사진술에 입각한 영사기가 아니라 컴퓨터다 보니까 온라인으로 실시간 적인 스토리 텔링이 가능하고 온라인 경험이 제공 되어서 새로운 가상 컨텐츠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방식이나 관심 갖는 분야가 있나요?
VR 경험의 핵심은 스토리 세계 혹은 가상 세계 속에 보는 이가 현존감을 느끼는 게 중요한데, 가상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잖아요. 현존했을 때의 감각이 아직 많이 발굴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나온 작업은 카메라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일 것이다’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식의 설정이잖아요. 다른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인데,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세계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지, 즉 관객이 이야기 속에 현존하면서 주체의식이나 감각을 더 갖게 될 부분에 대해 계속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간소녀>를 보러 온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소녀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기 공간을 새롭게 보는 것처럼 관객 분들도 VR 안에서의 공간을 재미있고 새로운 감각으로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취재 | 이혜은, 이혜진 루키
사진 | 지서영 루키
8월 17일 금요일 오후 5시 인디스페이스에서 [글로컬구애전] 스티브 산구에돌체 감독의 <미지의 땅 Land of not knowing>이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나고 스티브 산구에돌체 감독이 자리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눌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우울하지만, 사실은 공존과 새로운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종류의 주제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스티브 산구에돌체 :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이자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내 레코딩 스튜디오는 주변인들이 자신의 깊고 어두운 이야기를 털어두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들려고 결심한 순간은 제게 아주 어두운 때였습니다. 이런 슬프고 좌절에 빠진 순간을 영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 바닥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을 이겨냈는지, 극복했는지를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겪은 최악의 악몽들에 대해 접근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타인과 관객들이 이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지 발견하고 우울증, 자살 충동과 같은 지금까지는 말할 수 없던, 숨겨져 있던 일들을 끄집어내고 싶었습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며 염두에 둔 것은 신부가 고해성사하듯 올바른 방식으로 드러내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로 쓰거나 라디오로 표현하면 사람을 너무 획일적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저는 360도 모든 각도에서 그들을 비추기로 했습니다.
관객 1 : 인터뷰와 제작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스티브 산구에돌체 : 스튜디오로 불러 마이크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출연진 중 하나인 사진작가 마리나 블랙만 자기가 써온 내용을 읽었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말하게 했습니다. 질문은 없었습니다. 즉석에서 떠오르는 질문만(더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더 깊이 털어놓을 수 있는가) 조금 했습니다. 최대한 저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진실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입니다. 카메라가 앞에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마이크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상당히 치유되는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다 녹음한 후 녹음한 것을 다시 들으며 받아 적었고, 어떻게 공통점을 연결할지, 어떤 부분을 쓸지 고민했습니다. 목소리를 녹음하고 난 뒤 이미지를 입혔습니다. 애니메이터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와 유사한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만들 때는, 제가 과거 3, 40년 동안 찍어온 이미지를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일기처럼 찍어놓은 콜렉션 속에서 어울리는 이미지를 결정했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비유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뮤지션이기에 사운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운드도 이미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단어와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은유적인 느낌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뼈대로 삼아 그 뼈대에 옷을 입히듯 이미지와 사운드를 증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듯 영상과 사운드를 제가 가진 라이브러리 내에서 찾아갔습니다. 히치콕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그려 놓는 감독인데 저는 그와 정반대의 작업방식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작업실에서 제가 했던 주요 작업은 찍은 영상과 소리의 형태를 잡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디로 갈지 계획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그저 귀만 기울였습니다. 거울을 보아 내 모습을 판단하기 어렵듯 혼자는 어려울 때도 있었기에 다른 편집자를 고용하여 제 작업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관객 2 : 영상 푸티지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스티브 산구에돌체 : 제가 찍은 영상은 카메라로 찍은 분과 제 작업실 안에서 만들어진 푸티지가 있습니다. 작업실에서 만든 푸티지는 가격이 20% 정도 저렴했습니다. 흑백필름을 이용해 찍은 영상을 물감이 들어있는 양동이에 담가서 색을 입혀 만들었습니다. 특수한 염료를 사용해 필름에 색을 흡수시켜 느낌을 부여했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작업이고 프린트를 처리하는 랩에 보내기에는 너무 비쌌기에 직접 작업했습니다. 이 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의 느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일반 상업 영상물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면 묘사를 묘사하기에는 아주 적합했습니다. 예술가도 원칙을 가지고 매일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렴한 방식으로 매일 매일 작업하고 연습하고자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티브 산구에돌체 : 저는 캐나다 사람입니다. 캐나다 예술 진흥원 등에서는 이런 독특하고 실험적인 비상업 작품에 대한 지원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 조국이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막의 색이 계속 변했는데 정말 멋있었습니다. 작업해주신 관계자 여러분,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기록 | 홍수진 루키
사진 | 김진우 루키
8월 16일 오후 5시, 인디스페이스에서 ‘뉴미디어대안영화 단편’ 프로그램 (<멋진 신세계>, <솧>, <적정거리>, <나쁜 마음>, <달, 실>) 상영 후 감독들과의 GT가 있었다. 사회자의 진행 아래 관객들과 <솧>의 서보형 감독, <달, 실> 정섬, 이도 감독, <적정거리>의 박한나 감독, <나쁜 마음>의 명세진 감독이 함께 작품에 대한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상영된 단편영화 모두 감독님들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듯합니다. 감독님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게 되셨는지, 또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명세진: <나쁜 마음> 은 주인공 수연이 스트레스를 받다가, 집에 찾아온 엄마를 피해 창문으로 탈출하고 식물이 된다는 내용의 단편입니다. 현실 톤의 판타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박한나: 저는 일상에서 영상을 수집하고 채집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촬영합니다. 영상을 설정해서 촬영하는 스타일은 아닌데요. <적정거리> 는 관계 간의 적정한 거리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 피사체와 바라보는 사람들의 거리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실험해본 작품입니다.
정섬: <달, 실>은 제 어머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하여 제작했습니다.
서보형: ‘캐스팅’ 이라는 말을 찾아보면서 ‘배역이라는 것을 주되 배우를 집어넣는다’ 는 원리가 성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솧> 은 이런 자신의 이미지에 사로잡혀서 대상을 자신의 프레임 안에 가두려고 하는, 폭력성을 보여주고자 한 작품입니다.
정섬, 이도 감독님께는 두 가지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먼저 <달, 실> 이 판타지적인 만큼 장소 로케이션 헌팅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케이션 헌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하셨는지도 궁금하구요.
이도: 로케이션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기를 적은 돈으로 이런 공간을 찾기 힘들다고 했었어요. 또 제작비를 고려할 때 세트를 사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구요. 당시 저희 영화에서 그림자 춤 퍼포먼스를 해주신 분이, 제주도에 굉장히 오래된 농가를 고쳐서 직접 살고 계셨어요. 사진을 보다가 저희 영화랑 잘 맞겠다 싶어서 내려가 봤더니 그 자체로 좋은 공간들이 많았습니다.
캐스팅은, 어린 아이 역이라 힘들었는데요. 많은 아이들을 만난 끝에 결국에는 이번에 연기한 아역배우 아이린 양을 캐스팅했습니다. 아이린 양은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본 친구입니다. 사실 아이린 양의 어머니가 제가 아는 지인인데요. 어머니 스스로 배우이기도 하고, 또 딸이 끼가 있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혀 꾸미지 않은 느낌이 너무 예뻤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박한나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푸티지를 직접 수집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박한나: 우선, 우연적으로 그때그때 흥미를 끄는 많은 푸티지를 모으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끌리는 푸티지를 다시 찾아가기도 합니다. 일상적으로 촬영하고 싶은 순간에 푸티지를 모아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관객 1: <달, 실>에서 엄마가 우는 장면, 또 아이가 아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해석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정섬: 편집하는 단계에 따라 여러 편집본을 만들면서 아이린 양을 중심으로 만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이 조금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여러분 보시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시나리오 상에서는 엄마 역이, 젊었을 때 사랑했던 남편이 떠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아내가 남편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어찌보면 약간 미쳤다고 할 수도 있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집을 떠나버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되는 설정입니다. 물론 영화를 이해하는 건 여러분의 선택에 맡기고 싶어요.
이도: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님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배우랑 정확한 소통을 하고 히스토리를 많이 설정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영화 속의 엄마는 젊은 날 목숨 바쳐 사랑한 남자가 떠난 거에요. 죽었다기보다는요. 그래서 남아있는 딸을 보고 견디지 못해 미치기 시작한 상태라고 정의했던 것 같아요.
관객 2: <솧>에서 배우 이미경은 손에 단추를 쥐고 있었는데요. 이미경은 그 단추가 현실을 자극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중에는 손에 단추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캐스팅 장면과 시나리오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단추가 의미하는 게 뭔가요?
서보형: 단추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을 것 같아요. 감독 입장에서, 단추는 자기가 쓰는 시나리오 안에서 현실로 떨어져 나온 픽션의 한 조각일 것 같습니다. 배우 이미경 입장에서는 오히려 현실임을 증명할 수 있겠죠. 말하자면 단추에는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관객 3: <나쁜 마음> 속 화분을 보면서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시든 화분을 집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혹시 제가 본 게 맞다면, 시든 화분을 집어드는 것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명세진: 보셨던 게 맞습니다. 여러 가지 꽃도 피어있고 열매도 열린 화분 사이에서, 죽어가는 화분을 보면서 ‘얘가 제일 불쌍해보인다’, ‘물을 한 번 줘볼까’ 하고 가져왔다가 ‘내가 물을 안주더라도 어차피 죽을 건데’, ‘죽으면 어때’ 라는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를 옭아먹는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저는 공무원 준비는 한 적이 없지만 수능을 세 번 봤기 때문에 저런 심리상태를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소재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쁜 마음> 에서는 식물의 질감, 미술작업도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미술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명세진: 먼저 화분 속 풀은 마를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방 안에 달린 풀들은 인터넷에서 구매한 조화와 근처에 버려진 넝쿨들을 섞어서 달았어요.
박한나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적정거리>는 작품 속 음악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사운드 설계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한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사운드 역시 수집이라는 방식을 통해 작업했고, 몇 가지는 실제 사운드로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믹싱 작업에서는 정서적인 측면을 생각하기도 했었구요. 어떤 ‘정서’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관객 4: <솧> 의 배우가 중간까지는 화면의 중간 하단 쪽에 굉장히 작게 위치하다가, 중간 이후 새롭게 배치되었는데요. 그 배치의 의미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나중에 조명이 켜졌을 때 배우의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공간감이 사라지는 것을 의도하신 것인지, 그렇다면 후반부에 감독이 나오고 난 뒤 다시 질감이 살아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서보형: 화면 하단에 배우를 위치시킨 것은, 프레임이 컷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프레임 안에 배우를 가두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억압으로 작용했겠다, 하는 생각도 있어요. 후반부에 공간이 달라지는 것은, 실제 촬영할 때도 공간이 달라지기도 했고 연결성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사라지면서 배역으로 변해가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개인이 어떻게 이름을 얻나 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후반부에서는 공간이 변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께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참여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명세진: 저는 영화를 같이 만든 친구들과 씨네필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금 <하얀 악마> 라는 새로운 공포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게 한 편 한 편 찍을 때마다 많은 친구들의 노력, 예산이 느껴지는 반면에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적어서 항상 아쉬운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영화관뿐만 아니라 더더욱 확장되었으면 하는, 더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한나: 저는 작년에 네마프에 참여했었는데 올해도 참여하게 되어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느끼기로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실험영상 작업을 혼자서 하고 있구요. 전시나 상영의 경계선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도: 네마프 영화제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2회 때 첫 영화를 상영한 곳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인연이 지속됐던 것 같아요. 항상 영화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함, 애정, 열정 때문에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오신 많은 스탭분께도 마음깊이 감사드리고, 우리가 무언가 하나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해서 기쁘고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섬: 네마프에서 영화를 선택해주시고, 여러분을 만나서 소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좋습니다. 옆에 있는 이도 감독님과 저는 18년동안 3년에 한 편씩 함께 작업을 해왔는데요. 물론 서로 빚지고 이번에는 제가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에 처했지만(웃음). 영화가 만들어놓고 보면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극장에서 여러분들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보형: 네마프는 참 고마운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이상한, 특이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제이기에 항상 고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솧>의 revenge 버전을 찍었는데 내년에도 상영할 수 있을지 싶네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취재 | 전동현, 이혜은 루키
사진 | 전해라, 지서영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