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낮 12시, 탈영역 우정국에서 <말, 분리, 표류의 가능성 단편> 프로그램이 상영되었다. 이 섹션에서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과 개념을 이루는 기호의 작용이다. 기호와 의미의 상관관계는 주체와 대상, 맥락에 따라 강화될 수도, 느슨해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관계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 자리에는 <줄긋기와 줄 지우기>의 박한나 작가,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의 작가 임정수, 그리고 <언랭귀지드 서울>을 작업한 서울익스프레스의 홍민기 작가와 전유진 작가가 자리했다. 사회자 설경숙도 GT자리를 지켰다.
각자 자신과 작업에 대한 소개와 작업 의도에 대해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유진: 저희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표현하며 성가곡을 사용해 전시와 공연을 통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모습을 세 개의 멀티스크린과 아날로그 형 티비를 사용해 표현했고, 사운드적으로는 여섯개의 다른 언어로 구성된 가사와 심플한 형태의 성가곡으로 서울을 표현했습니다.
임정수: 이 영상은 퍼포먼스의 한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제목에 많은 요소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신체는 조형미가 느껴지게 하는 행동을 지시하는 지령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령은 배경이 가지는 부분적인 조건을 지시했고 그것을 신체가 시도하면서 겪는 괴리감에 대한 작업입니다. 신체가 사물화되면서 겪는 경험을 그린 것이죠. 그런 과정이 가로수들, 인공적 식물이나 파편화된 베란다의 울타리들, 시스템 안에서 우연적으로 선택된 공간물이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목과 연결하여 이해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박한나: <줄긋기와 줄 지우기>를 작업하면서는 규정을 해야했던 것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움직임도 규정되어야하고 줄 안의 것과 줄 바깥의 것으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스티리폼도 유용성을 가질 때에는 실용성 있는 물건이지만 그 실용성을 다하면 쓰레기가 됩니다. 쓰레기와 실용적 물건 사이를 규정하는 줄이 있고, 그것을 지우려는 과정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무언가가 실용적 가치를 잃었을 때의 표류한 상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홍민기, 전유진 작가는 ‘서울익스프레스’라는 팀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한 분은 사운드를, 한 분은 영상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나누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홍민기: 이 프로젝트는 한번도 서울에 오지 않은 외국 작가들과 함께 서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언어를 최소화하고 이미지만을 통해서 소통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험 결과였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했는데 하나는 비언어적인 것을 가지고 소통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이 가지는 욕망을 서울에 와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해시키고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대한 욕망과 비언어적이고 분산된 단어만을 가지고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고, 그래서 영상도 최대한 단순한 이미지로 구성했습니다. 음악을 듣고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을 한 것이죠.
영화 속에서는 서울이라는 단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나오는 파편적 기호와 사물들 속에서 소통이 가능한 것일까요?
홍민기: 예전에는 서울의 앰비언스 사운드를 녹음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탄핵정국이어서 시위하는 소리도 있었고 절 노래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발행하는 여러 이미지를 본 적도 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이런 다름 조차도 서울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욕망하는 바가 잘 드러나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에서는 서울이 여러가지를 포괄하는 것 같습니다.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는 말을 전복시킨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입니다. 감독님은 그것을 시각적인 것을 촉각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설명합니다. 촉각적인 것을 인칭이나 대상 사이의 관계로 표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임정수: ‘촉각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촉각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촉각은 촉감보다는 공기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에 지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는 촉감은 주인공이 하는 행동과, 그와 관련된 사물이 되어보려는 행동인데 그 사물이 가진 질감을 행하거나 아예 그것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의 표면이 되려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가지려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그 속에서 계속해서 괴리가 생겨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매칭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공기를 만드려는 게 있어서 촉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대상이 하필 식물인 이유는 있나요?
임정수: 제가 생각하는 식물이 한국어로는 없는데, 식물이라기보다는 식물의 형상을 가진 조형물에 가깝습니다. 식물의 역할을 대신하는 구조물들입니다. 지금이 도시가 아니라면 다른 것들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있겠지만 시스템화가 되면서 도시를 담당하는 구조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무언가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지시를 받는 입장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줄긋기와 줄 지우기> 박한나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줄은 부정적인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줄에 대해 관객이 어떻게 느끼길 바라셨나요?
박한나: 제가 느낀 건 그저 그 상태일 수는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리하는 과정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테고리 안에 없는 애매한 상태의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민 자체가 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규정내리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의 과정이 영화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언랭귀지드 서울>에서 말이 나타나는 방식은 비일상적이고 난무합니다. 이를 종교적 형태로 풀어서 표현했는데, 성가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홍민기: 저는 영상을 담당했지만 원래는 15세기 음악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15세기 음악이 아주 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작업한 건 그 다음 세대의 음악인데 무반주로 아이들이 연주하는 게 집중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악기가 들어가면 사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죠. 그것들이 없어서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유진: ‘언랭귀지드 서울’입니다. 그래서 서울을 말이 아닌 무언가로 표현하는 게 가장 큰 컨셉이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악기나 여러 멜로디, 선율조차도 랭귀지가 될 수 있고 가사 안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가 가지는 컨텍스트도 하나의 랭귀지를 구성합니다. 하지만 그걸 다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가지는 기본적 소통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상과 언어의 기능이 없는 언어가 가지는 가능성, 더 직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음악도 성가라는 포맷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가가 주는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학적으로 봤을 때 서울이 주는 복합적인 양면성과 다면성을 성가 역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비언어적인 것을 사용했지만 음악이 아이러니하게 전달해주는 것은 텍스트들입니다. 연결의 힘은 없는 텍스트들이지만 많이 전달되고 분산됩니다. 악기가 없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성가라는 고유의 청각적 이미지와 결합되면 괴리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은 괴리감이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 도시의 이미지들과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언랭귀지드 서울>을 볼 때 인간의 말을 들을 때의 자연스러운 사고과정이 방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주는 감정이 있었는데, 이러한 감정이 어느정도 반영되길 원하시나요?
전유진: 총 6개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모두 해석되면 맥락은 생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느껴지면 안된다는 의도여서 자막을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습니다. 청각적인 이미지가 모여서 하나의 직관적 이미지를 형성할 때는 만드는 입장에서 관통하는 맥락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거창한 건 아니고 언어와 말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의 통일적인 이야기는 성가에서 쓰는 말이나 현대적으로 맥락이 맞닿을 수 있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들 역시 언어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 즉 언어에 대해 언어가 메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러티브는 없지만 무얼 지시하는지는 명확한 편입니다.
줄에 대한 표현이 굉장히 개념적인데, 그것을 사물들 사이에서 찾아낸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포착해낸 과정이 궁금합니다.
박한나: 설정해서 한 작업은 아니고, 많은 소스들 중에서 내가 가진 테마를 중심으로 푸티지를 정리하고 추가로 촬영했습니다. 제가 그 당시 집착했던 주제인 살면서 느낀 답답함이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저를 건드리는 몇 가지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관객1: 저는 서울 사람이 아니지만 서울에서 본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언랭귀지드 서울>을 봤을 때 성가인지는 모르고 이슬람 노래라는 생각을 해서 이민자에 대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줄긋기와 줄 지우기>를 보면서는 줄을 지우는 게 erase의 의미가 아니라 짐을 ‘지우다’의 지우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너의 가로수가 되거나, 너의 베란다 울타리가 되거나>를 보면서는 음성을 들으며 생략되는 말이 많았는데, 그의 의도를 듣고싶습니다.
홍민기: 언어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통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언어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언어로서 이야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하죠. 저희가 주목하는 건 그런 지점입니다. 분절적인 언어만 가지고도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사원도 틀린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서울을 완벽히 정의하려 한 게 아닙니다.
임정수: 지시한 걸 행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 저는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데 설치작업 자체가 영상이 될 수 없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편들을 띄어쓰기 해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생략이 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한나: 줄 ‘지우기’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참신한 생각 같습니다.
소통에 대한 바탕이 다들 깔려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중매체의 탓도 있겠지만 이러한 소통방식은 아직은 난해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일상의 소통 가능성과 예술 작품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묻고싶습니다.
전유진: 언어가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저희 작업도 마찬가지고, 다른 실험영화들이 난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전달의 방식이 아닌 정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난해하게만 만들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런 방식을 통해 줄 수 있는 감각을 설계하고 만듭니다. 또한 저희 팀은 그런 감각에 있어서 청각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음악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편입니다. 설명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나 정보보다 두번째 감각일 수 있는 청각적 요소들이 사실은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임정수: 저는 삶이나 예술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게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낭만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상상력이 직접적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정해진 언어 자체가 두루뭉실한 카테고리어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 같고, 카테고리화 된 것을 상상력으로 열면서 구체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파편화 된 것을 불가능한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전달 가능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졌으면 합니다.
박한나: 이미지가 가지는 또다른 소통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 작가님이 말하신 것처럼 조금 더 직접적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안에서 그게 항상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열어주는 것이 영상이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더 감각하고, 새로운 소통을 하길 바랍니다.
홍민기: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다면 그게 온전하게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희의 작업은 저희가 느끼는 모순, 감정들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면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소통 방식이 감정의 측면과 정의를 넘어선 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다른 의미를 부여해도 그 자체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관객2: 계속해서 대중매체를 통해서 언어적인 방식으로 소통했는데 비언어적인 소통을 보며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을 들어보니 그러한 소통방식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계획하는 작업이나 소감에 대해 한마디씩 듣겠습니다.
전유진: 저희는 이렇게 말이나 언어에 대한 섹션이 묶여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의미있는 섹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전 세계의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에 음악이 가미된 공연 및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정수: 전달하는 내용의 언어도 그렇지만 감정도 언어로 정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너무 밝은 음악을 들었는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보통 언어적으로 다뤄진 작품들은 감정도 카테고리화 된 감정으로 들어간 것 같아서 마음이 안좋습니다. 그런 감정을 벗어나있는, 그래서 더 진짜의 감정으로 갈 수 있는 네마프 같은 기회가 있어서 행운입니다. 작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박한나: 긴 시간 보시고 들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마프에서 상영하게 되고,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과 맥락이 맞는 주제전에 초청받아 영광입니다.
기록 | 김혜림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
8월 21일 낮 10시, 탈영역 우정국에서 <뉴미디어대안영화 단편2> 프로램이 상영되었다. ‘뉴미디어대안영화’는 네마프가 지향하는 인권, 젠더, 예술감수성의 문화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들을 프로그램 디렉터, 프로그래머, 전문가의 추천 등을 통해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차미혜 작가의 <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 이소정, 배꽃나래 작가의 <트러스트폴>, 오재형 작가의 <블라인드 필름>과 신나리 작가의 <September>이 상영된 후 GT가 진행되었다. 자리에는 설경숙 프로그래머와 다섯 명의 감독, 관객들이 함께했다.
오재형 작가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개막공연으로도 선보인 작품인 <블라인드 필름>을 상영하시게 되었어요. 네마프에서는 액티비즘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영상들을 선택적으로 재구성, 재창조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기존의 영상을 찾아 재작업한 이유와 의도가 궁금합니다.
오재형: 제가 가장 많이 참여하고 변호했던 곳이 강정마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세월호였고, 이후에는 비디오에서 용산, 밀양을 접했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했거나 경험한 순서대로 장면의 비중이 있었고, 굳이 제가 직접 촬영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강정마을에서 퍼포먼스를 한 분의 퍼포먼스 장면을 허락받은 후 사용했고, 다른 다큐멘터리를 쓸 대도 허락을 받고 썼습니다. 나머지는 유튜브나 뉴스 채널에서 클립을 가져다 썼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겪는 고통의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에 유투브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었습니다.
신나리 작가님의 작품에서도 다른 객체의 작품을 배경으로 작업하셨는데, 실제 사진 작가님의 해석이 개입된 것인가요?
신나리: 제가 그 분의 작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 인터뷰를 제 작업에 넣지는 않았어요. 저도 작가로서 그 분의 작업을 영상으로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말로써 하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작업이 할 수 있는, 이미지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작업의 크기나, 그분의 시선, 이야기를 최대한 영상으로 담으려고 했었어요. 그 작가 분이 필름으로 작업을 하셔서 완성자로 계시기 때문에 제가 그 분의 작업을 마음대로 쓰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분은 조건에 따라서 최상의 조건이 되어야만 인화를 하는 작업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한 작품들이 꽤 있었지만 저희가 작업을 할 때에는 실제 그 분이 작업한 건 그대로 찍어서 실패한 작업들도 영상 작업에 넣었었습니다. 마지막에 찍은 사진은 제가 처음에 그 분을 만나게 된 계기라서 넣게 되었어요.
제목에 대한 논의는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나리: 제목도 그렇게 정한 이유가 관객들 나름대로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9월’이라는 의미도 될 수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아이를 배는 9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진작가분을 인터뷰하면서 어떤 제목이 좋을까를 생각했고, 제 나름대로는 최대한 작가와 대화하려고 했습니다.
차미혜 작가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상은 픽스된 프레임으로 찍힌 후 그 곳의 미세한 움직임이 몽환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진적이면서도 회화적인 것을 영상으로 풀어내며 무생물에 있는 생명성을 담아냅니다. 그 곳에 들어가있는 인물들을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과는 구별되게 쓴 것 같은데, 의도하셨던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미혜: 이 작업은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작업이라 제가 감각하는 것이 작업 도중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 바다극장을 가봤을 때에는 정지되어 있고, 비어있는 스크린, 무대, 객석이라는 공간 자체가 70년대라는 가보지 않은 시공간을 환기시켰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한 색감과 독특한 이미지들을 포착했었습니다. 그 안에 이미 정지된 이미지와 소리의 결이 있었고, 시간의 색이 만드는 독특한 결이 있다고 느껴서 따로 어떠한 물성을 가져오지는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퍼포머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 곳의 에너지가 강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언젠가는 거기에 있었을 법한 인물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의 서사뿐 아니라 상상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스크린 속의 인물들을 퍼포머로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퍼포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건 퍼포머의 배역이었습니다. 같은 인물이 극장에도 있고, 그 밖의 오래된 아파트나 부근의 골목들을 다니는데 여러가지 배역을 소화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무대 위의 인물처럼 연기하기도 하고, 바깥을 걷는다든가, 뒷모습을 포착할 때는 바닥에 발을 붙인 사람, 혹은 아닌 사람을 나누는 식의 연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은 인물이지만 여러 공간과 시간대에서 변주되며 호흡하는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두 감독님은 <트러스트폴>을 연출하면서 연기도 직접 하셨습니다.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건지에 대해 묻고싶습니다. 또한 관계 내에서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자신 안의 감정도 느껴집니다. 소통을 통해서 관계 이외의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이소정, 배꽃나래: 두 달 후면 이 작업을 끝낸 지 1년이 됩니다. 이 작업을 상영하고 볼 때마다 저도 느끼는 게 굉장히 달라지고, 그 시기에 감응했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저희에게 있었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이었던 관계에 대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보면서 그때 들었던 질문에 대한 답도 달라지고, 한동안 잊고있던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보통은 이 작업을 보신 분들에게 형식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런 형식을 떠올린 이유는 관계에 대한 생각때문이었어요. 지나간 관계를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이야기로 재현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계를 떠올렸을 때 남는 건 파편적 이미지와 단편적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차미혜: <트러스트폴>에서 퍼포먼스 관련된 부분에서 연출을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중간에 서로 미는 장면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이소정, 배꽃나래: 저희가 이 작업의 형식을 고민할 때 상당히 많은 형식이 후보에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푸티지를 넣는 것이었어요. 그걸 고르는 와중에 장난으로 게임하는 게 있어서 이게 지금의 관계나, 그 당시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퍼포먼스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를 보면, 인물들이 서있고 커튼이나 문과 같은 오브제를 많이 활용하시는데요, 그걸 통해서 의도한 점이 있으십니까?
차미혜: 작업을 할 때 물질들, 물성들, 딱딱한 것이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었어요. 커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70년대에는 객석 300석이 꽉 차고 바깥에서 영화를 기다렸다고 해요. 제가 갔을 때는 모든 사물들이 그 자리에 정체되어있었는데 그걸 움직이게 하겠다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유나 비유로 접근하지 않고 퍼포머에게 물성을 부여하면서 고정된 사물이지만 언젠간 움직였고 지금도 미묘하게 움직이는 사물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멀리 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70년대에 누군가 의자를 밀쳐서 비스듬이 옮겨졌을 수도 있어요. 이런 상상들과 아이디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연결하면서 다른 시간이지만 연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움직임이 작고 미약해보여도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공간의 에너지를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음악을 사용한 세 작품의 작가분들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한 음악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시면서 의도하는 바가 있으셨습니까?
신나리: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음악을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사운드 녹음을 하고 싶어서 마이크를 곳곳에 놔두었는데 그분들이 듣는 음악을 빼니 자연스럽지 않고 그분들의 실제 생활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사운드 작업을 하지 못했어요. 원하는 음악은 아니었는데 그 분들이 일상생활에서 계속해서 들으셔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다른 바닷가 소리나 필름 인화소리는 인위적으로 넣었는데, 제가 피치못할 때는 그 곳의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오재형: 2009년에 네마프에 출품한 작업 역시 피아노가 깔리고, 애니메이션이 지나가는 형식이었고 다음 작업들도 모두 뮤직비디오 형식이었어요. 대사보다는 음악과 이미지가 흘러가는 형식이 좋아서 그렇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는데 이번 작업 하면서는 제 감정이고, 제 작품인데 음악도 제가 만드는 게 서투르더라도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음악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감정을 이끌어줄 수 있도록 만들었고 피아노와 영상의 형식으로 계속해서 작품을 할 생각이 있어서 작곡에 대해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미혜: 저는 배경음악보다는 사운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바다극장이 특유로 갖는 비둘기소리와 쥐소리가 강렬한데, 그런 소리들을 채집해서 이미지에 입히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영화에서 사용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었는데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들렸습니다. 그 이전에는 감각하지 않았지만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게 들렸어요. 음악을 결정적으로 사용하게 된 신호는 소리만 나오는 꿈이었는데, 모르는 누군가가 허밍으로 그 노래를 부르는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어느 장면에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쓰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만으로 기록했습니다. 무대 장면에서는 허구성이나 배역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데, 마무리 작업 때 이 장면에 음악을 넣고싶다는 직관적인 감정이 들어 배치했고, 가사를 짚어보기도 하며 다양한 맥이 보여 그 부분에 넣게 되었습니다.
이소정 작가는 영화에서 분활화면을 많이 썼습니다. 대칭적으로 둘의 모습이 나오는데 갑자기 혼자만 뒤돌아보는 장면에서는 얼굴만 보이기도 합니다. 화면을 그렇게 사용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소정: 애초에 두 명이 시작한 작업이었고, 이걸 누구 한 사람의 시점을 통해서 관계나 경험을 단정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계속 그 과정 자체가 본인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분할화면은 두 개의 시점과 시선의 교차와 미끄러짐을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해 사용했습니다. 또한 서로가 각자를 보는 초상을 이미지로 주고받는 형식을 통해 관계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친구를 바라보는 모습에는 친구의 나레이션이 등장했고, 반대의 경우에는 반대로 연출했습니다.
관객1: 오재형 감독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블라인드 필름>은 찍은 화면과 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변형한 작업입니다. 그 변형과정에서 색이 강조 되고,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는데 그것을 통해서 원하신 효과가 궁금합니다.
오재형: 가슴 아픈 이야기와 그들의 장면을 재현하는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다면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주변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해요. 이 감정에 이 작업방식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작품 형식에 대해 점점 더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다큐멘터리나 뉴스에서 사람들이 오열하고, 머리채 잡히는 장면들이 저는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클리셰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너무 중요한 사건인데 반복되니 하나의 흘러가는 장면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애니메이션으로 색감을 멋있게 표현하면 사람들이 더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통해 2차 창작을 했습니다.
관객2: <트러스트폴> 감독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영화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밤도시가 나오는데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장면을 두번 삽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소정, 배꽃나래: 같은 장면이나 같은 장소는 아니고 각각 다른 목적으로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찍은 장면입니다. 처음에 등장한 밤 씬에서는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을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의미로서 재현을 해서 다시 찍은 것이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밤 씬에서는 같은 장소를 각자 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걷는데도 다른 것을 찍는 것을 담고 싶었습니다. 다른 시선, 합쳐지지 않는 입장을 표현하고자 분활화면으로 끝냈습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작업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전시장과 극장에서 영화로서 관객을 만나는 것 사이의 차이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소정: 아직 저희는 갤러리에서 전시의 형식으로 상영해본 적은 없습니다. 저도 전시관에서의 전시와 영화관에서의 상영 사이의 차이가 주는 효과나 영향에 대해 공부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차미혜: 이 작품은 2015년에 세개 채널로 설치작업을 진행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미술관과 영화관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성인 것 같습니다. 전시장의 경우는 싱크를 맞추지 않는다면 세가지 영상이 교차되거나 맞물립니다. 그래서 관객과 이 작품이 만나는 순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실험에 관심이 있어서 전시장에서는 그런 지점에 집중했었습니다. 반면 스크리닝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어서 장면 사이의 연상작용이나 흐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큰 차이인 것 같습니다.
신나리: 저는 이 작품을 네마프에서 처음 상영하는데, 계속 다큐 작업을 해오던지라 대사가 안들어가고 인터뷰가 빠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미지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형식이나 소재가 너무 실험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관객을 만날 때 두려움도 있었어요. 네마프라서 용기있게 내보았는데 상영이 된다고 해서 너무 기뻤습니다.
오재형: 갤러리와 극장의 차이라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크리닝은 끝까지 봐야한다는 전제가 있어서 시작점과 끝까지의 내러티브가 의도한 대로 전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의 하얀 스크린에서 작품을 다루는 게 비개성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전시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한다는 전제가 없어서 흥미가 없으면 그만두기도 쉽지만 흥미가 있다면 중간부터 끝, 그리고 이전의 것으로 돌아가면서 생긴 중첩된 부분으로 인해 관객들이 의미를 다르게 추산할 여지가 큰 것 같아요. 그리고 각각의 공간에 맞게 영상을 다르게 꾸밀 수 있는 매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록 | 김혜림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
8월20일 탈영역우정국에서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특별강연이 진행되었다.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독립영화의 미학과 나아갈 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김종갑 몸문화연구소 소장의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구성된 강좌였다. 질의응답은 설경숙 모더레이터가 진행했다.
설경숙: 분리의 수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 제도의 분리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많이 내려고 하는데 그런 경우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분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해진 수사,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번 떨어져서 지켜보자. 그러한 취지에서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김종갑 교수님 모시고 강연 듣겠습니다.
1. 강연
1) 넘쳐나는 정보와 새로운 정보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 오히려 대다수의 정보들은 의미를 획득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각자의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은 어느 정도의 위계나 제도를 따라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간은 차등화, 의미화가 나뉘는 공간이다. 이를 통해서 사회가 굴러갈 수 있으며 ‘사회란 무엇이다’ ‘영화란 무엇이다’라는 식의 지식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정보를 다시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독립영화 또는 뉴미디어 장르에 있어서 작업이란 비판적인 과정이며, 사회 참여적이고, 전복적이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어떤 길일 것이다. 제도권 내에서 안전하고 신뢰받는 상식적인 정보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정보를 말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지만 잠재가치가 높은 일이다. 즉 우리가 영화를 만들고, 미술작품을 만들 때 정해진 패턴을 따른다면 가장 인정받기 쉬운 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란 위계화된 것들을 어떻게 전복, 재배치, 변혁할 것인가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그 문제는 의미와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재구성하며 재배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2) 현대: 심리적 사회
예술, 영화라는 허구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런 저런 감동을 받거나 세상에 대해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상업영화들이 소재로 삼는 것이 독립영화/뉴미디어 작업의 소재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사회를 전복하고 비리를 드러내고, 저항하는 이야기들이 사실상 영화의 생명을 구현한다. 많은 영화의 플롯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고서 사회적 질서가 엉망이다, 이런 말들을 하게 되지만 사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기에 새로운 인식이나 지식이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 상업영화에서 더 흥미를 끄는 인물은 악당 혹은 팜므파탈들이다. 막스 베버는 현대 사회를 심리적인 사회라고 정의한다. 그 까닭은 도덕적 사회에서 윤리적인 사람들이 높은 위치에 오른다면 심리적 사회에서는 도덕적 옮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좋고 싫음이 중요하다. 어떤 취향에 권력이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영화의 악당들은 매력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우리가 사회적 악을 지적하고 제도적인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작업을 할 때, 이미 모든 것이 비판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또 달리 말한다면, 이미 알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할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3) 상업영화가 잡음 없이 주는 것
다시 정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너무나 많은 정보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각 매체를 다룬다면 어떻게 많은 정보 사이에서 압축된 메시지로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라는 고민이 들 것이다. 만약, 상업영화의 경우를 들어본다면 감독은 수많은 시각적 정보 사이에서 하나의 보여주고 싶은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보도록 해야 합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은 잡음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이 잡음만 본다면 아마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엄청나게 많은 잠재적인 정보들을 다듬어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어떻게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 라는 것이, 상업영화의 지향점일 것이다. 잡음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써 여러 가지 영화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령 <정글북>의 한 장면, 뱀이 모글리를 자신의 눈만 보도록 조종하는 것이 아마 영화가 노리는 효과일 것이다. 잡음들은 전부 배제하고 메시지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따라서 주고 싶은 정보로 시선을 한정시키기 위해 영화가 선택하는 장치 중 하나는 클로즈업, 혹은 스테레오타입이다.
4) 대항영화는 어떻게 ‘잡음’을 재구성할 것인가.
상업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어떻게 수많은 잡음을 걸러낼 것인가의 문제라면 대항영화, 대안영화의 경우는 반대일 것이다. 축소된 잡음들을 어떻게 듣도록, 드러내도록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업영화가 억압해야했던 것들, 그리고 영화 내에서 무시하도록 조작된 정보들을 어떻게 재활용하여 우리의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단일한 정보가 아니라 잡음들에 주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개념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독일어 Unheimlich이다. Unheimlich란 익숙한 것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길들여지지 않은 잡음이 영화 속에서 새어나올 때, 그 순간 우리는 낯설음을 느낄 것이다. 상업영화가 배제한 낯설음 사이에서 우리는 일상을 계속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질서 잡힌 코스모스가 아니라 무질서한 카오스적인 것에 변화가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 체계와 상징질서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목소리들을 찾아내야 한다. 일상에 감춰진 비일상적인 것들을 드러내는 가능성에 아마 상업영화적 문법이 아니라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서 다른 문법이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적인 행위일 것이다. 엄청난 정보들을 제도나 권력이 범주화한다면, 그에 대항해 선악/미추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대항적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지 않을까.
2. 질의
설경숙: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잡음을 부활시키며 대항예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작품을 예로 들어주신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종갑: <낮술>이나 <똥파리>를 들고 싶습니다. <똥파리>의 경우에는 너무 분명한 메시지만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극적으로 탁월하게 효과를 내는 영화입니다. <낮술>의 경우는 일상과 일상 사이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스스로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잡음을 드러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죠. 우리가 너무 주위를 의식하지 않으면, 오히려 잡음을 더 드러내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객1: 바흐친을 언급하셨는데, 지금 선생님이 언급하신 부분과의 접점이 어떤 것인지 듣고 싶어요.
김종갑: 아까 잠시 보여드린 베이컨 자화상이 바흐친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자화상이라면 그 개념이 있거든요. 그 자화상의 주인공이 화가이고 위대하다, 지적이다, 등등 어떠한 기대지평을 가지고 바라보거든요. 그것을 뒤흔들고 그래서 그러한 경계를 유발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그러한 화폭의 문법을 구사하지 않았는가.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 그러한 범주로 환원되지 않는 제3의 가능성이 바흐친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경숙: <대화의 조각>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주류매체에서 사용하는 의도가 있는 이미지와 말이 아닌 말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비춰보잖아요. 단어가 아닌 표정이나 제스처에는 이런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화의 조각>은 또 초점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잡음을 드러냈을 때 초점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김종갑: 대항영화, 잡음을 살리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초점이 없으면 안 되죠. 새로운 초점을 들여오거나 다 초점을 이용하는 것이죠. 그럼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고요.
설경숙: 작품의 구조나 진행 방식에 있어서도 다른 배치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김종갑: 다른 배치라는 것이 영화든 글이든 플롯을 만들잖아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시작-중간-끝의 배치이겠죠. 그런데 만약 끝을, 중간 자리에 놓으면 굉장히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렇다면 배치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계는 어떤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배치에 따라 전혀 다른 실체들이 되거든요. 현실이라는 것은 배치에 따라서 달리 구성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관객2: 앞서 말하신 <푸드주식회사>는 선생님 설명에 따라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김종갑: <푸드주식회사>는 잡음이 없고 날 정보가 그래도 드러나요.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육하는 것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든요. 실제적인 충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미는 해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예술 작품은 허구거든요. 19세기까지는 감상을 했는데 20세기는 감상이 아니라 해석이에요. 해석을 하면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충격효과가 범퍼효과라고 무뎌지죠. 그래서 아무리 급진적인영화를 만들지라도 해석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충격이 하나도 없어져버리거든요.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의 발견이 가능한 것인가 싶은 고민도 듭니다.
관객3: 강연 제목이 “겉도는 말, 헛도는 삶”이잖아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종갑: 그 문제의식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은 가지고 있어요. 한국의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가 왜 뉴욕의 이론으로 한국 현실을 설명하는가. 내가 하는 말과 삶이 얼마나 위배되는가. 모든 말이 다 겉돌지 않는가, 그러면 겉도는 말에 어떻게 진정성을 부여할까. 이것이 제가 고민 하는 건데 영화도 마찬가지죠.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을 어떤 영화적 장치와 기법을 통해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나하고 영화작품은 서로 겉도는 거죠. 그래서 언어가 언어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언어가 우리 삶의 위선이 되죠. 그런 점에서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정리 | 김지안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
백기은 작가는 드로잉을 통해 그의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한다.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글로컬구애전X’에서 백기은의 설치 작품과 영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개막식 전날,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작품 설치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홉 개의 이야기로 이뤄졌지만, 그 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넣었어요. 움직일 수 없는 세계에서 잘못된 방법으로라도 하늘을 날아 봤으면 하는 이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어 내장을 뺏긴 채 하늘높이 던져진 개구리의 죽음, 모든 의지들이 높이높이높이로 끝없이 경쟁하는 상황들. 이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최종 목표, 미래일 수도 꿈의 실현일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3단계의 재조합된 상황을 넣었어요.
첫 번째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공간의 이미지, 둘째는 첫 번째 공간의 요소들로 조합된 공간에서 놀이처럼 움직여 보는 공간, 셋째는 마구 엉켰던 것들이 하나하나 풀어헤쳐지는 장면을 넣었어요. 그리고 엔딩에는 만날 수 없는 친구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넣었어요. 여덟 개의 이야기들은 필연적으로 아홉 번째, 새로운 세계를 위해 달려가는 영상들이었지요. 영상과 함께 설치된 철사로 만든 입체작들 또한 재조합된 몸, 움직일 수 있는 구조체들, 일명 프로펠러 동물들의 공간을 나타냈습니다.
이번 작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주제를 미리 정하지는 않았어요. 늘 해야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건 드로잉을 하면서 끝에 정했거든요. 어떤 형식으로 표현해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명절에 5살 조카를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나면 참 짠하지만 명절은 힘들잖아요. 자기 전에 동화책 몇 권을 읽어 주다가 목도 아프고 피곤해서 조카한테 읽어달라고 했는데, 꼬마가 글자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는데 너무 잘 읽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조카가 글을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주차금지’를 ‘강아지 조심’으로 틀리게 읽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니 조카가 글을 아직 모른대요. 어제 몇 권을 읽었는데 하나도 안 틀렸었거든요. 오히려 설명을 해주면서 내용과 맞는 얘기를 한지라 너무 놀랐어요.
그 뒤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읽어주느냐에 따라 내용이나 상황이 다르게 읽힌다는 점을 알았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 세월호 사건 등으로 패닉이 되어있었던 때였는데 밤이고 낮이고 모든 사람이 힘들었잖아요. 이 시대에 하는 작업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돌아봐 주는 어떤 지점에서 맥락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암울해서 다시 무엇을 꿈꿀 수 있을지 반문할 때에 이야기 책 읽어가는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백기은 작가님에게 드로잉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자기 전에 일기처럼 쓰고 자는 거에요. 요즘 주제는… (드로잉을 보여주며) 좀 삶이 힘든가 봐요. 이십 대 이후에 혼자 살기 시작한 후로부터, 하루라도 안 힘든 날은 없었지만 왜 힘들어야만 하는지 그걸 생각하는 거죠. 아무 생각이 안 날 때는 그냥 종이에 끄적거려보기도 하고, 어떤 공간을 떠올려보기도 하는 거 같아요. 편안한 상태 또는 장소를 종이에다 그려 보는 것 같아요. 생각을 그려보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하는 상상을 합니다. 드로잉의 힘을 빌린 상상의 장치, 그냥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적인 것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결국은 움직이는 영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고요. 이렇게 뭔가를 그리며 마무리하고 자는 거죠. 저에게는 이게 매일매일 하는 작업이에요. 결국은 사는 어려움들에 관한 싸움을 일기로 정리하는 과정이 저에게 필요했던 거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길을 못 찾기 때문에 하는 거죠. 이것으로 숨을 쉴 수가 있구나 하는 거죠.
자기 생각과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이나 고민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법적으로 보호가 되는 상황이 아니에요. 노동착취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해요. 눈뜨고 작품을 뺏기거나 기증 당하는 경우도 많죠. 전 작년까지만 해도 노동자라는 단어에 매우 슬퍼했는데, 하는 일을 그만 두고 미지급된 급여에 대해 노동청에 신청했는데 노동자가 아니어서 안 된다는 판례가 나왔어요. 꽤 낙담했죠. 월세는 높아만 가고 살 곳은 없는데, 저의 위치는 프리랜서 혹은 개인 사업가 사이의 미묘한 지점에 있고. 그냥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느낌인거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하며 살겠다고 늘 생각해요. 새로운 작업, 더 나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계속 보인다는 것이 이 모든 답답함을 아무것도 아니게 하더라구요.
작가님이 창조해내는 생명체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심해동물이나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러한 생명체의 형태들을 어디서 착안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단순화된 생물체들이 매우 많은데, 생물체를 드러내기 위한 건 아니고 대상이 필요했어요. 이 대상은 가까이 있고 매우 단순하지만, 손가락처럼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더듬더듬 움직여 바깥을 보는 거예요. 기관 중에서 감각하는 지점, ‘촉수’라는 게 가장 기본적인 형태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 촉수, 두 촉수 만들어 가다 보니 여기서 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계속 시리즈로 작업하다 보니 심해 해양생물들의 공간과 비슷해졌죠.
패닉, 충격의 시간에서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전 두세 번 정도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처음의 패닉은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이었고, 그 다음은 자취 생활 10년을 함께 한 토끼가 죽었을 때였고, 또 그 다음은 5년을 힘들게 암 투병했던 아버지의 죽음이었죠. 가족...그런 감정들을 말로 하기가 항상 어렵지요. 제겐 시간 말고 있는 것이 없었고 틈틈이 드로잉, 철사작업을 계속 하면서 집중하는 동안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늘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죽음, 헤어짐이라는 건 너무 허망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나는 혼자 버려졌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떻게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죠. 이런 기분과 느낌을 무엇으로 어찌할지 몰라서 의자에 앉을 때면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렸어요. 매일 나를 봐 주었던 그들의 기억들, 느낌들이 펜에서 내 손, 혹은 몸 속 흐르는 피 속에 돌다 어느 날 종이 한 켠에 나와 그림 속에서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더는 만날 수 없으니 너무 그립지요. 아버지가 암 투병하실 때 치료를 다하지 못해 한 맺힌 상황들도 계속 떠오르고요. 생각한다는 것이 뭔가를 떠올릴 때마다 그 상실감이라는 것도 계속 반복되었어요.
한동안은 시간이 흐르도록 그냥 두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 때문에 사물의 존재감, 그 표면이라든지 질감, 촉감, 감각들에 집중하려고 한 것 같아요. 깊이를 말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만지작거리며 오래 작업하게 된 것 같아요. 더 나아가 이야기, 고민, 이뤄지지 않는 바람들을 영상의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이렇게 살았죠. 이 속에 제가 느껴왔던 바가 들어 있기도 해요.
이전에도 네마프에 참여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 작업이나 전시 준비 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네마프가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이었을 때 1회, 2회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졸업 무렵이었어요. 아무 것도 모를 때라 망설임이 없었고, 그래서 더 용감했고. 무척 즐거웠을 때죠. 지금은 많은 사건을 겪고 난 이후지만. 그래도 작업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어떻게 나아갈지 준비하고 있죠. 그냥 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17년, 18번째네요. 그 긴 시간 동안 네마프가 계속 있어서 고맙고, 네마프를 통해 많은 작품들을 보는 것이 정말 힘이 돼요. 많은 작가들이 작품들을 어렵게 만들어내서 매해 올리는 걸 보면 너무 좋아요. 여름하면 네마프를 같이 떠올리죠. 특별한 공부의 시간이라고 할까요. 그냥 ‘있구나’하고 인지하는 것과 ‘어떤 지점에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해왔구나’, ‘이렇게 다양한 시선들이 있구나’라고 느끼는 지점은 매우 다르죠. 학교나 교육기관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찾아와서 배우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것. 이런 것이 달라진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기은 작가는 인터뷰 내내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었다. 또한, 직접 드로잉노트와 작품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에서 그의 드로잉에 대한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드로잉을 통해 섬세하게 풀어낸다. 백기은 작가의 다음 드로잉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취재 | 이은아 루키
사진 | 김지원 루키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 <울림>이라는 작품으로 함께 하게 된 장-줄리앙 푸스 감독은 애니메이션과 영상 작업을 하는 프랑스 감독이다. 중국 무한에서 태어나 작품에도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가 녹아있다. <울림>은 제주도 해녀와 피레네 산맥의 염소농가 여성이라는 두 여성 노동자의 삶을 촬영한 영상 설치 작업이다. 8월 25일 4시 10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먼저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서정희 작가를 만난 후입니다. 서정희 작가님은 원래 재단 지원으로 설치미술을 할 계획이었고, 공동작품을 하고자 했습니다. 또 당시 한불교류의 해였기 때문에 한국과 프랑스를 촬영하고 싶어 하셨어요. 또, ‘노인’에 대한 주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에 있는 나이 많으신 분들을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을 거친 후 시골에서 노동을 하고 계시는 노인분들을 찍기로 했어요.
그 중 한 직업은 해녀였는데, 저는 원래 해녀에 대한 사진을 봤었고 외국인으로써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카리스마 있고 강한 인물을 프랑스에서 어떻게 찍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종종 다니던 산맥의 촌락에서 염소를 키우는 부부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촬영을 진행한 후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재편집을 거쳐 <울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전 작품 <Sous L'eau>는 이방인의 입장에서 서울을 관찰하는데요. 닿을 수 없는 것들, 그래서 분절된 것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 <울림>에서는 공간적 차이를 뛰어 넘어서 어떤 연결성을 표현하신다고 하니 흥미로운데요. 두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연결성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원래 두 지역을 시각적으로 연결할 계획이었습니다. 서정희 작가님이 상징적인 방식으로 연결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우유와 바다, 염소의 젖과 바다의 해물, 그런 것들이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업이 하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서정희 작가님은 이러한 연결성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셔서 별개의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멀리 떨어진 두 국가에서, 자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비슷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산업화된 세상의 반대편에서, 스스로의 몸을 이용하여 고강도의 노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도시의 삶은 항상 이웃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생산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두 분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양을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서 만든다는 점이 대단합니다.
두 지역은 동일한 공간이 아닌 만큼 각각의 독특한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두 지역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듣고 싶고,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피레네와 제주도라는 지역을 선택하신 계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현실적인 부분들을 적절하게 고려하여 두 지역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실은 한국은 아직 낯설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해해가면서 고정관념을 깨나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으로서는 프랑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에 사는 만큼 프랑스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두 지역 간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피레네 촌락에서 염소를 치는 부부는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지내는 낭만적인 삶을 추구해서 그런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물질적 고난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촬영 2년 후 부부를 다시 만났을 때, 두 분의 이가 거의 빠져있었어요. 가난한 삶의 증거인 것이죠. 그 사실에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편으로 한국의 경우 해녀 분들은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제주도에 태어나서, 자신의 어머니도 해녀였기 때문에 해녀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처럼 낭만적인 마음으로 어려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한국의 경우처럼 선택권은 없지만 잘 하려고 노력한 경우에서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랜 세월동안 한 가지 노동을 수행해온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는 과정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제주도와 피레네 산맥이라는 공간적 거리뿐 아니라, 전통적 삶이라는 시간적 거리 등 두 지역과 두 노동자의 삶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그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짧은 기간 동안 촬영한 까닭에 피상적인 이해 수준일 것 같아요. 양쪽 모두 몸도, 마음도 매우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레네 산에서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밤에 어떤 소녀가 염소들에게 둘러싸여 서있는 모습이에요. 아직도 마음에 많이 남아있는 장면입니다. 한편으로 염소를 치는 부부는 자기 노동의 리듬 때문에 쉬는 시간이나 휴가가 거의 없어요. 1년 내내 2명이서 염소 40마리를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세계 반대쪽에 있는 아름다운 섬에 사는 것을 꿈꿉니다. 염소를 키우느라 자식도 낳지 못했어요. 대신 이들은 동물들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사는데, 모든 염소의 이름과 성격을 압니다.
해녀들의 경우에는 다른 삶을 꿈꾸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촬영 당시 제가 이미지와 사운드를 동시에 관리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또 한국어와 제주도 방언이라는 언어적 한계도 있었고요. 해녀의 삶은 힘들지만, 건강한 생활양식 덕분에 장수를 많이 한다는 점도 신기해요. 해녀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제주도 여성들이 아주 강한 편입니다. 확실히 해녀 분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실 것 같아요.
두 지역, 그것도 도시가 아닌 굉장히 전통적인 지역들을 오가며 작업을 하면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혹은 촬영 작업에서 어떤 에피소드는 없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제가 오랫동안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그러나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장비가 많이 없어서 그냥 수영을 해서 촬영했습니다. 11월에 수중촬영을 하니 물이 많이 차가워서 추웠어요. 그래도 가급적 열심히 집중했더니 물에서 나온 후 무릎이 다 까져있더라고요.
도시에서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환경이란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고 큰 차이 없는 것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ous L'eau>가 경험하는 분절들은, 사실 단기적 관계만을 맺게 되는 도시인들의 전체적인 감정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의미에서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그것을 존중하는 <울림> 속 노동자들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도시에 살면서 매일 장을 볼 때마다, 식품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식품 첨가물과 식품 생산, 노동 문제가 얼마나 디스토피아적인지 알게 되었고, 그건 상당한 충격이었어요. 이제 장을 본다는 것은 전 성분을 다 보아야하는, 힘든 일이 되었어요. 그래서 농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친환경 생산자 협동조합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옷 등 거의 모든 소비들에 있어서 노동자를 존중하는 소비를 하려고 해요.
육체적 노동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혹은 그것이 이미지화될 때 보통 남성 노동자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여성 노동이라면 가사 노동으로만 이미지화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이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여성노동자,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까요?
한국에 와서 여성들이 처한 조건과 성평등에 관심이 많아져서 관련된 기사, 책,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습니다. 태어난 시점부터 우리는 타고난 성별에 따라서 좁고 엄격한 틀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에는 문화적 차이도 있는 것 같은데요. 한국은 특히 ‘여자다움’ ‘남자다움’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직 여성해방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예를 들어 제주도 같은 경우는 모권이 강한 사회가 있는 것 같아 신기합니다. 앞으로 성평등과 여성들이 처한 조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데, <울림>에서도 조금은 보였을 것 같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어떤 ‘울림’을 가지길 바라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울림>의 내러티브는 루즈하고 리듬도 느립니다. 관객 여러분이 열린 마음과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상영계획은 다른 유럽과 미국 영화제에서 <울림>이 상영예정에 있어요. 그 다음에 옛날 해녀들의 삶과 성평등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 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혹시 제 작품에 관심이 있는 PD,기자,연구자,페미니스트 활동가 분이 계시다면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취재 및 정리 | 김지안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