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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RUM] 얀 슈반크마예르 특별포럼
    NeMAF 조회수:3152 추천수:11
    2017-08-21

     

    8월 20일 4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얀 슈반크마예르 특별포럼이 열렸다. '연금술사의 밀실: 이종배아 시네마와 정치성'이라는 제목으로 대략 2시간가량 행사가 진행되었다. 먼저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정찬철 연구교수의 [이종배아 시네마:정치적 알레고리]와 나호원 애니메이션 연구가의 [호문클루스, 라이브 액션과 애니메이션의 이종배아에서 태어나다] 강연이 진행되었다. 강연의 열기를 이어받아 체코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할 차브카 감독, 아네타 차브코바 감독과 함께 토론도 계속되었으며, 질의 시간을 가지며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얀 슈반크마예르를 깊이 알 수 있었던 이번 포럼의 현장을 더욱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1.강연

    1-1. 정찬철 [이종배아 시네마: 정치적 알레고리]

     얀 슈반크마예르는 대부분 작품에서 이종배아의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라이브 액션과 애니메이션 기법이 두 가지의 이질적인 요소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넣어 기괴하고 끔찍한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을 통해 체코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더 나아가 인간 문명에 대해 냉소적 시선을 보냈습니다.

     얀 슈반크마예르의 많은 작품은 그 당시 체코 사회를 특징짓는 공산주의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라이브 액션과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거부라는 점에서 정치성을 담고 있죠. 그의 작품은 초기부터 공산주의가 원하는 선전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중단되거나 정치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일기장>,<대화의 가능성>을 만들면서 작품 활동이 금지되기도 하였으며, <보헤미아의 스탈린>,<죽음의 식탁>,<오테사넥>의 작품을 통해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1-2.나호원 [호문클루스, 라이브 액션과 애니메이션의 이종배아에서 태어나다]

     애니메이션이 전공인 사람들은 얀 슈반크마예르감독의 작품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합니다. 그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다룰 순 없기 때문에 슈반크마예르의 형식과 가장 비슷하게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캐비닛, 서랍, 재료들, 호문클루스와 같은 키워드들을 사용하여 슈반크마예르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요. 예를 들어 캐비닛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키워드입니다. 실험실 혹은 연구실, 밀실, 옷장, 진열장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옷장이라는 키워드는 한정된 방안을 무대 세트로 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 필수적인 소품으로 등장합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며 저에게 얀 슈반크마예르는 이렇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상자 속의 누군가가 들어있고, 그 누군가를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를 흉내 내기도 하고, 외부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도 하죠. 그리고 놀라게 해주기도 하고, 신비함을 자아내며, 때로는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고 느꼈습니다.

     

     

     

    2.토론

    정찬철: 왜 얀 슈반크마예르는 감정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나요?

     

    미할 차브카: 애니메이션 속에서 살아있지 않은 사물들을 살아나게 하고,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 사물들이 보통 때 하는 역할보다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호원: 오브제로 작업하는 것은 그림을 그려서 작업하는 것과 상당히 다릅니다. 영화에 찍혔던 사물들이 밖으로 나와서 만질 수 있는, 입체적인 실체 오브제라는 것이 강하게 작동을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정천철: 저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감정의 추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태어났을 때의 감정들, 어른이 되어서 완전히 잊게 된 순수한 감정의 이미지를 촉각적으로 다루고자 하지 않았을까요. 잃어버린 감정에 대한 추구였고 감정의 이미지를 통해서 그것을 찾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찬철: 3D 애니메이션 영화가 감정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2D는 어떤가요?

     

    아네타 차브코바: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인정받지 못하는 배우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감독이 어느 정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 주변을 둘러보고 감각화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항상 줄거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고 그 줄거리와 주인공을 통해서 제가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정찬철: 얀 슈반크마예르의 작품에서 혀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는 왜 사물들과 신체 중에서 굳이 혀를 등장시켰나요?

     

    나호원: 일단 작품 안에서 상징적으로 보자면 에로틱하기 때문입니다. 또 혀가 표현하기 어렵지만 다루기 쉬울 수도 있고요. 혀라는 것은 촉각이자 미각이고 통각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죠. 혀를 사용함으로써 감각이라는 것을 극대화시키고 그것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미할 차브카: 얀 슈반크마예르가 고기와 동물의 부위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자면, 고기의 부위들은 원래 살아있었던 생물체였죠. 그런데 동물을 죽이고 나서 살아있었던 생물은 사물로 변화합니다. 그는 사물들을 가지고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는 원래 살아있었던 사물에게 다른 역할을 줄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고기나 혀를 보면 징그럽지만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병에 걸려 살이 많이 빠졌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양원에서 고기를 많이 먹어야만 했죠. 그러한 기억 때문에 영화에서 이러한 기억들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정찬철: 얀 슈반크마예르가 혀에 집착했다면 다른 감독님들이 집착하는 사물이나 대상이 있나요?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할 차브카: 애니메이션에서 공기를 불어서 쓰는 사물을 많이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풍선 같은 것들이요. 풍선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도 있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공기를 불어넣은 인공 여자주인공이 나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촬영할 때 그런 아이디어들이 나와요. 일부러 원해서 넣은 것이 아닌 무의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얀 슈반크마예르처럼 어린 시절에 기억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공기를 넣은 장난감을 좋아했거든요.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아네타 차브코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공포영화를 보여주셨어요. 그런 공포영화를 볼 나이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최근에 만들었던 영화와 책을 보니까 흡혈귀나 괴물이 항상 나와요. 아마 그 공포영화를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나호원: 스탑모션을 했던 친구들이 집착하는 이미지가 텍스쳐였던 것 같아요. 축축함과 녹슮이요. 기계의 녹슮이나 살점의 축축함과 같은 것들이요.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정찬철: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면 집착하는 사물들이 나오고 계속 매달리는 감정들이 공통적으로 속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고다르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여성의 삶에 대한 질문들이 참 많아요. 저도 같거든요. 그런 질문들이 해법 또는 답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그의 영화를 보면 이별이나 그리움 같은 순수한 감정이 많이 등장해요. 관객들과 감독들도 집착하고 있는 사물이나 감정들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특정한 영화를 지속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찬철: 동시대 혹은 이후 시대의 애니메이션 작가 중에서 누가 얀 슈반크마예르를 계승하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가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해서 체코 감독님 두 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할 차브카: 얀 슈반크마예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정받는 감독이기 때문에 후계자들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잘 알려진 감독들이 총 세 분 있습니다. 첫 번째로 팀 버튼감독이 있고요. 두 번째는 몬티 파이튼의 성배로 알려진 테리 길리엄. 그리고 세 번째는 퀘이 형제인데요. 이 형제들은 얀 슈반크마예르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서 캐비닛이라는 영화를 바쳤습니다. 후계자뿐만 아니라 팬들도 엄청 많습니다. 새로운 영화 촬영하게 되면 전 세계의 팬들이 체코에 모여서 무상으로 영화촬영을 도와줘요. 그리고 보상으로 엔딩 크레딧의 자막으로 이름이 나오고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있죠.

     

    아네타 차브코바: 제가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학생들이 입학할 때 어떤 감독을 좋아하고, 또 어떤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얀 슈반크마예르라고 대답합니다. 얀 슈반크마예르의 작품에 감탄하여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요.

     

     

    3. 질의

    관객1: 미할 차프카 감독님과 아네타 차브코바 감독님은 얀 슈반크마예르의 어떤 영화에 영향을 받았고, 이를 영화에 어떻게 반영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아네타 차브코바: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님의 작품에서 감탄하는 것은 음향입니다. 음향을 만들 때 실제처럼 느껴지는 것과 미미한 것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미미하고 자세한 것까지 생각하면서 예술작품을 만들면 전체적인 인상이 좋아져요. 저도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이런 미미한 것, 자세한 것 촬영하려고 노력합니다. 예 들어서 여자가 머리를 빗을 때 그냥 빗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굽실거려 잘 빗겨지지 않은 순간 같은 거요.

     

    미할 차프카: 제가 프라하국립공연예술대학교 영화학부에서 공부했을 때, 얀 슈반크마예르와 같이 작업하고 프로덕션 했던 야르미아 칼릭스타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프로덕션에 대해서 가르쳤고 항상 얀 슈반크마예르 영화를 예를 들어서 예산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영화 촬영하는 과정이 어떤지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얀 슈반크마예르 아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아들과 친구가 되었고, 친구 덕분에 얀 슈반크마예르와 직접 만날 기회도 몇 번 있었어요. 그리고 졸업 영화 촬영 당시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저도 혀의 사물을 사용했습니다. 그처럼 따로 쓰지는 않았고 <프리매멀스Premammals>라는 제 영화에서 공룡 혀로 활용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동물을 먹기 위해서, 땅속에 있는 구멍으로 혀를 넣고 동물들을 잡는 장면이 있습니다.

     

     

     

    관객2: 얀 슈반크마예르가 <앨리스> 이전에는 단편 애니만 작업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얀 슈반크마예르가 정치적으로 대중들도 쉽게 잘 접근할 수 있었나요? 또 어떤 식으로 알려졌고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미할 차브카: 체코 사람들은 그 당시에 그의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을 때 뉴스, 단편영화, 장편 영화 순으로 상영되었거든요. 그때 그는 단편영화만 촬영했기 때문에 장편영화가 나오기 전 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장편영화는 보통 공산국가에 알맞은 영화가 대다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장편 영화 표를 사서 단편만 보고 나올 때도 있었죠. 정부의 대표자들이 그의 작품을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동안 상영금지 한 적도 있어서 볼 수 없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영화 <앨리스>는 외국자본을 받아 촬영된 영화였기 때문에 혁명 이후에 상영이 가능했습니다.

     

     

     

    관객3: 정찬철 사회자님의 질문 중에 사물 오브제들의 촉각적인 변환을 다룬 부분이 있습니다. 변환하면서 이성과 육체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담으셨는데 그 변환을 담게 된 연결성이 궁금합니다. 또 아까 3D 애니메이션에서 감정 이미지를 표현하기 쉽다고 하셨는데 그 점도 궁금합니다.

     

    정찬철: 제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얀 슈반크마예르의 영화를 보면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이 다 함께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 둘이 결합하였을 때 제3의 사물,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합니다. 혹은 이 둘이 각각 독립된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같은 시공간에 있게 되면서 초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영화들을 속에서 인간들은 그냥 실패하거나 소통하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되죠. 다시 말해서 이런 인간의 존재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은 슈반크마예르의 전편을 가르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의식이라고 봅니다. 육체와 이성,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연결하는 이종 배아 형식은 주제의식을 전달한 완전한 하나의 매개물인거죠.

    두 번째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3D 영화가 입체성이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도 있었겠네요.

     

     

     

    관객4:감독님들과 사회자님들께서 얀 슈반크마예르의 좋아하는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나호원: <대화의 가능성>을 좋아합니다. 제일 처음 봤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 수업 중 수 백 편의 작품을 보여줘도 학생들이 항상 제목을 물어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흔히 생각하던 애니메이션과 다르기도 하고 촉각적인 사운드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네타 차브코바: 각각의 영화들이 큰 아이디어가 있고 감정적인 영화라서 한 가지만 고르긴 어려운데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앨리스> 인 것 같습니다. 얀 슈반크마예르가 상상력을 가장 많이 활용했던 영화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제가 참을 수 있는 공포만 나오거든요. 나머지 작품은 공포가 심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미할 차브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대화의 가능성>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영화상을 받은 영화였죠. 정말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결합해 활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장편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쾌락의 공범자들>입니다. 이 영화가 촬영되었을 때 대학을 다녔었어요. 당시 얀 슈반크마예르의 프로듀서와 스튜디오를 다니면서 영화 촬영하는 경험이 쌓였어요. 특히 사운드 녹음할 당시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찬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역시 <쾌락의 공범자들> 인데요. 영화를 보시면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과 느낌인데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만 충족시키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오늘날 저희도 직접적인 소통보다는 이미지나 기계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소통하며 살고 있죠. 또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그렇습니다. 순수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매개체만을 통해서 소통합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복원해야 하는 감정들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 | 신민정 루키

    사진 | 김지원 루키

     
     
     
     
  • [TALK] 매칭토크: 홍이현숙작가전X
    NeMAF 조회수:2864 추천수:10
    2017-08-21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X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획된 ‘홍이현숙작가전X: 수행의 간격’ 전시의 매칭 토크가 8월19일 아트스페이스오에서 열렸다. 매칭토크에서는 이충열 페미니스트 미술가의 진행으로, 홍이현숙 작가의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의 질문 시간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충열: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 미술가 이충열입니다. 오늘 홍현숙 작가님을 모시고 매칭 토크를 진행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입구에서 나눠드린 글 <“어째서, 나는, 여태껏, 대체, 왜, 홍이현숙 작가님을 몰랐을까?”>에서도 썼듯이 이번 매칭 토크 제안을 받고서 홍이현숙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에는 여성들이, 여성 작가들이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지 못하고 역사화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집중하면서 미술계에서도 남성중심적인 질서들, 시각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젊은 작가들과 페미니즘 아트리서치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페미니즘과 미술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느끼던 차에 이런 기획에 참여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관련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전시 작업 중 <광화문 풍경>이라는 작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 이전 작업으로 <피케팅>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실제로 작가님께서 청운동에서 1년 동안 세월호 피켓을 들고 있고, 광화문에서 머무르시면서 진행된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청운동에서, 작가님과 다른 요일에 피켓을 2년 넘게 들고 있어요. 저같은 경우에는 그런 과정을 작업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는데요. 작업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홍이현숙: 광화문이 아시다시피 많이 바뀌었잖아요. 저는 근처에 있는 풍문여중, 진명여고를 나와서 항상 광화문이 학교 같아요. 그래서 광화문 앞이 익숙한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려고 눕기도 하고 놀고 해보니 또 다른 장소성을 가진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정신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포근한 방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런 여러 가지 느낌을 통해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충열: 저에게는 광화문이 경찰 대치 혹은 최루액을 맞았던 기억을 연상시키는 데요. 그래서 작가님 작업을 보고 ‘이 공간을 이렇게 전유할 수 있구나’ 싶어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피켓팅> 같은 경우도 청운동에서 경험했던 힘들고 치열한 과정들을 가지고 작업하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피켓팅을 거리에서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불특정 다수 앞에서 스스로가 젊은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남성이 피켓팅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공격과 위협을 받아야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피켓팅이 굉장히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피켓팅>에서 표현하는 것은 피켓팅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마치 놀이처럼 다른 사람과 다른 방법을 가지고 접속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청운동에서의 경험과 작업으로 연결된 과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홍이현숙: 피켓팅을 실제로 하면서 만나는 것들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피켓팅은 현수막과는 달리 내가 들고 움직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건데, 거기서 발생하는 미묘한 기류가 있어요. 상대방은 계속 피켓을 지나쳐서 안보고 가려고 하고, 나는 보여주려고 하고. 어쩌면 일방적인 폭력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조금 경쾌하고 즐겁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서 생활하는 정말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곳이 자기 삶의 장소인 분들이 일으키는 공간의 기류들이나 주고-받음 같은 것들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로 조금 더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이충열: 작가님의 최근 작업부터 보려고 하는데요. <폐경 폐경>과 <조촐한 추모>를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가지는 어쩌면 <우리집에 왜왔니>라는 작업에서부터 연결되어왔다고 보였습니다. <폐경 폐경>을 통해 여성들의 몸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그러면서 동네 언니들 이야기인 <우리집에 왜 왔니>라는 작업을 하게 되셨고, 노래 ‘우리집에 왜왔니’의 이야기를 아시면서 <조촐한 추모>로 이어진 것으로 압니다.

    홍이현숙: <우리 집에 왜왔니>는 동네 아줌마들이 자기 집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기 집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하게 여긴 건 한 분이 얘기를 할 때 다른 분들이 어떤 리액션을 취하는지,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였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공감도 높고 얼마나 엎어지면서 웃는지 되게 재밌었어요. 그런데 ‘우리 집에 왜왔니’라는 노래가 일본에서 매춘 소녀들을 공출할 때 나왔던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왜왔니1>에 이어서 <우리집에 왜왔니2>를 통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충열: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생식 능력이 있을 때만 ‘여성’으로 인식합니다. 폐경, 이제는 ‘완경’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변화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이 아니게 된다는 부분에서 상실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작업으로 보여주시는 작업들이 <폐경 폐경>, <구르기>, <날개>인 것 같아요.

    홍이현숙: 저는 털에 좀 페티쉬가 있다고 할까요. 털하고 머리카락, 몸에서 자라는 것들에 대해서 되게 많은 생각과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삭발을 한 적이 있는데요. 시아버님이 굉장히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사실은 좋으신 분인데, 제가 삭발한 모습을 보고는 분노하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가볍게 부딪힐 것인가, 바꿀 것인가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견인하는 힘을 가져야한다고 봐요.

     

     

     

    이충열: <북가좌 엘리지>와 <구르기>의 요가 장면과, <폐경 폐경>에서 담을 넘고 뛰어 다니는 모습들을 보면 작가님께서 신체를 참 잘 쓰신다는 생각을 해요. 보통의 인식으로는 체조를 하고 몸을 잘 쓰고 하는건 젊은 몸이잖아요. 우리는 보통 젊고 튼튼하고 건강하고, 그리고 남성으로 상상되는 몸을 ‘몸’으로 떠올립니다. 그래서 작가님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몸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르기>처럼 신체를 사용한 유머도 돋보이고요. 이런 작업들이 가능했던 건 신체를 숙련하는 과정 덕분일까요? <사자자세>를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충열: <사라지다> 이야기도 안할 수 없는데요. 누군가는 땅을 파서 건물을 짓는 자원으로써 몽골초원을 보겠지만 작가님은 그냥 느끼시고 지나쳐 사라지신단 말이에요. 만물의 영장으로써 지배하고, 개척하고, 영토화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써 인간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자자세>를 통해 사자가 되기도 하고, <폐경 폐경>에서는 새처럼 날으시기도 하고, 그런 수행적인 작업들이 <사라지다>에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되기’들을 시도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홍이현숙: 당장은 서울역 광장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질문을 통해서 더 많은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1: 작업들을 보면서 아줌마의 상징인 ‘꽃무늬 원피스’가 눈에 띕니다. 슈퍼맨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슈퍼맨의 옷이 떠오르듯이 작업에 등장하는 옷에 대한 정신성을 쌓기 위해서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옷 자체에서 어떤 힘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옷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홍이현숙: 그 원피스는 모래내시장에서 5천원 주고 산 냉장고 원피스예요. 내가 아줌마이니까 더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의상을 선택한 거기도 해요. 다른 측면에서는 제가 사실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작업의 전체적인 통일감, 연결성을 주는 것이 옷의 힘이기도 해요. 그런 시각적인 연결성을 주는 좋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관객2: 육아와 엄마로서의 경험이 작가님의 작업과 세계관, 작업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홍이현숙: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항상 과거를 기억할 때, 당시 ‘큰 애가 몇 살이었지?’라고 생각해요. 삶의 연대기 자체가 큰 애랑 붙어있는 거죠. 그리고 사실 상 육아를 하면서 삶이 분리가 안 되죠. 그렇지만 결혼을 안했더라면 또 다른 경험과 감정이 있었을 거예요.

     

     

     

    관객3: 작가님은 스스로를 1세대 설치미술 작가, 여성주의 작가, 미디어 퍼포먼스 작가 등등 어떤 수식 내지 분류를 원하시나요?

    홍이현숙: 사실 그 모든 게 다 섞여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훈련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다양하게 만드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변할 수 있고 바뀌어간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관객4: 전시를 샅샅이 보고 나니 선생님께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나는 방식, 특히 위안부 문제를 만나는 방식이 중압감을 덜어내며 비장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 신체에 대한 혐오, 혹은 장소에 대한 상실감 역시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문제의식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유쾌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건에 침잠하지 않으면서 무거움을 덜어내는 방식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홍이현숙: 바닥을 밟으면 올라갈 수가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좀 더 가라앉아 보는 것을 택해요. 확 놔버렸을 때 오히려 잡아주는 게 생기기도 해요. 제가 최근에 산을 다녔는데, 처음에는 높은 곳에 가면 발이 안 떼졌어요. 그리고 계속 다리가 떨렸어요. 여러 번 훈련을 하고 나니 같은 산이 그냥 편하게 올라가지더라고요.

     

     

     

    관객5: 이렇게 오랜 시간 작업을 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홍이현숙: 사실 저는 작업 말고 다른 할 것이 없어요. 작가가 정말 어려운 게, 뭘 해야 할지를 계속 해서 스스로 결정해야한다는 거예요. 예전에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는데, 작업은 아침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해요. 또, 계속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자신감 혹은 자만감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결국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잡아끄는 힘이 만들어집니다. 나이가 드니 버팅기기 시합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관객6: 조각을 하시다가 퍼포먼스 작업을 하시게 된 것으로 압니다. 퍼포먼스 작업의 매력이 뭐가 있을까요?

    홍이현숙: 설치도 하긴 해요. 설치미술 할 때도 그렇고, 언제나 유머를 잃고 싶지 않아요. 영상이 그런 점에서 장점이 되는 부분이 있죠. 물론 설치도 되게 재밌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공공미술이나 설치작업도 하면서 최대한 재밌고 산만하게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충열: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반복되는 수행으로부터 생기는 자신감, 에너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고, 작가님의 작업을 만나게 되어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취재 | 김지안 루키

    사진 | 김지원 루키

     

     

     

  • [GT] 한국구애전 장편4 <시간위示間威>
    NeMAF 조회수:2454 추천수:6
    2017-08-21

     

     8월 19일 19시 30분 탈영역 우정국에서 한솔 감독의 <시간위 示間>가 상영되었다. 상영이 끝난 후 변성찬 모더레이터과 한솔 감독의 GT가 진행되었으며,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제목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한솔: 시위(示威)라는 단어 중간에 간(間)자가 껴서 시간위(示間威)입니다.

     

     

     

    영화의 인터뷰이가 몇 분 정도 되었나요?

    한솔: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매우 많았지만, 녹음상태나 여러 이유로 편집되었어요.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이 작품을 학생 때 과제로 처음 만들었거든요. 출품하게 될 줄 모르고 제작하게 되어서 인터뷰하신 분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어요. 이 점은 질타 받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몰래카메라 같은 장면의 연출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광장의 힘이 있잖아요, 광장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너그럽게 받아주시지 않을까요?

     

     

     

    관객1: 먼저 기획 의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고, 처음에 과제로 제작했다고 하셨는데 마음을 바꿔서 여기에 출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한솔: 먼저 기획 의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저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이러면 안 되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고 반성하는 의미로 시위를 나갔어요. 제가 사진영상과여서 얼마 전에 샀었던 옛날 캠코더를 들고 나가서 찍었어요. 1987년 6월항쟁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성립된 항쟁이잖아요. 그리고 이후 2016년의 촛불 집회가 최대의 민주항쟁이라 일컬어지고 있고요. 그때의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두 번의 항쟁에 키워드가 길게 연결된 거죠. 87년도나 2016년이나 유사한 사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의 것을 결합했어요.

     두 번째 질문의 답변은 처음에는 90년대 삼성 캠코더와 CRT TV로 상영하는 설치 작품으로 시작했어요. 맥락을 맞춰서 옛날 비디오에 옛날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찍고자 했어요. 여러 작품들을 만들면서 이전 작품들도 아카이빙을 진행을 하는데 계속 거기에만 담겨 있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을 좀 더 다져보기 위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굉장히 흥미롭게 봤어요. 괜찮습니다. 작품의 출발이 여러 가지 면에서 반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업을 위해서 캠코더를 구매했을 것이고,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많은 리서치를 해야 가능하다고 봐서 작정하고 만든 것으로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것과 다른 동기로 시작됐다는 점이 저는 와닿네요.

     

     

     

    처음에는 2016년 촛불 집회에 있는 분들에게 현재 대한 질문과 과거에 대한 질문을 작위적으로 섞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 질문을 87년 당시의 상황에 가서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이 소통될 것 같아요. 질문들이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온통 87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하고 있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질문들을 어떻게 생각하시게 된 건가요?

    한솔: 자료조사를 할 때 옛날 아나운서들이 했던 질문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방송사를 포함해서 여기저기 연락을 했는데 답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신문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신문에는 그 정황에 대한 것만 나와 있어서 결국 문헌 조사를 통해서 직접 질문구성을 했어요.

     처음에는 대뜸 '극동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대답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스브레킹으로 시작해서 제게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야 질문을 드렸던 것 같아요.

     

     

     

    또 질문에 대답하시는 분들 반응의 미묘한 차이들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을 것이고 우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한솔: 말씀하신 것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만들었어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87년도에도 나왔을 법한 대답이거든요. 똑같은 질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답이 똑같다는 것을 제가 보고 싶었고요. 과거의 이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관심이 사라져요. 그런 식으로 덮는 거죠. 우리는 딱히 달라진 게 없고 바뀌기 위해서 더 다른 것들을 해야 한다고 봐요.

    이대역 앞에 있는 한 공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그 공간 대표님이 하는 프로젝트가 ‘누구나 구의원 되기’에요. 항상 정치 얘기를 하다가 '그래 우리 투표 제대로 하자'고 끝이 나요. 우리가 유권자인 건 확실히 알아요. 그런데 자기가 직접 출마를 하고 직접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거든요. 그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가 구의원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과정을 알기 위해서예요.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보게 되고 어떻게 사람들을 부리게 되는지 알게 돼요. 꼭 찾아가 보세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진짜로 출마하려고 하시는 건가요?

    한솔: 네. 워크숍을 하고 계시는데 출마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요.

     

     

     

    인터뷰하면서 인터뷰이들을 구성을 할 때 인구통계학적인 방식들을 고려를 하신 건가요?

    한솔: 편집을 할 때 인터뷰이를 고른 기준은 ‘쓸 수 있는 푸티지인가?’였어요. 순서 구성은 제 성향과 맞는 분들을 앞에 두고, 아닌 분들은 뒤에 뒀어요. 맨 마지막 분은 저를 딸로 생각하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아서 넣게 됐습니다. 마무리는 감동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질문을 다 자막으로 처리를 하셨는데 그분만 질문이 없었어요. 그건 의도적으로 하신 건가요?

    한솔: 아니오. 제가 질문도 안 드렸는데 말씀하신 거예요. '말씀 여쭤봐도 되요?' 이렇게 말씀하시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쭉 말씀하신 거예요.

     

     

     

    관객2: 영화를 만드는데 모티브가 된 작품들이나 이런 구성형식을 만들게 된 출발점이 궁금해요.

    한솔: 사실 레퍼런스는 없어요. 찾아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그런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가 있다면…. 캠코더는 예전에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샀던 것이었어요. 저희 아버지에 대한 프로젝트였죠.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져보고자 뿌리를 찾아가 보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그 캠코더를 들고 아버지께 취재도 가고, 친척들도 찾아 뵙고 정치 얘기를 하시는 친구분도 찾아갔어요. 그분들이 얘가 오늘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됐다더라, 구의원이 됐다더라, 이런 얘기들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들의 배경을 보면 정치 쪽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냥 트럭 운전을 하시던 분인데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 출마를 하신 거였어요. 어떻게 당선이 되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들을 보고 이상하기도 하고 조금 더 이해하고 싶기도 하고 해서 옛날 캠코더를 가지고 들어온 것 같아요.

     

     

     

    작품 시작하게 된 배경을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요. 관객 입장에서 오래된 매체, 캠코더로 찍은 화면이 익숙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형식적인 특성에 대해 왜 이걸 사용했을까 하고 긴장을 하면서 보게 돼요. 또 중간에 포커스가 흔들린다든지, 테이프를 갈아 끼워야 하는 순간의 노이즈라던지. 이런 것들이 노출되면 관객 입장에서는 어떤 감각적인 메신저와 관련된 의도적인 선택일 거라고 생각을 하게 돼요. 의도적인 연출이었나요?

    한솔: 오래된 카메라이다 보니, 노이즈가 생긴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당연히 그런 오작동이나 노이즈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걸 없애느냐 살리느냐 연출의 선택이잖아요.

    한솔: 콘텐츠를 살려야 해서 가져온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첫 작업에 대한 소감과 앞으로의 작업의 계획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어요.

    한솔: 아이디카드 발급해주신다고 하셨을 때 제가 받아도 될까 생각했었거든요. 상영할 때도 누군가가 앉아계신다는 것도 그렇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총 열 두분 앉아 계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지금까지도 모두 자리 지켜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계속 작업은 하고 있었지만, 더 열심히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원래는 영화 자체를 언급하는 영화를 만들었었어요. 지금은 VR로 영화 문법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인디아트홀 공에서도 CRT를 이용한 다른 전시를 하고 있는데 시간 나시면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기록 | 신민정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

     

     
  • [REPORT] X프로그램 현장
    NeMAF 조회수:2671 추천수:9
    2017-08-20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8월 17일부터 8월 25일까지 전시 프로그램인 ‘X프로그램’을 진행한다. X프로그램은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열리는 [대안장르: 버추얼리얼리티아트특별전X],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되는 [글로컬구애전X], 그리고 아트스페이스오에서 열리는 [홍이현숙작가전X: 수행의 간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는 총 17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총 23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X프로그램의 현장을 담아보았다.

     

     

    [버추얼리얼리티아트특별전X]가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극장 아이공에는 총 다섯 개의 VR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소리가 주체가 되어 공간을 이끄는 것을 표현한 <사운드스케이프>(룸톤), 동시형-VR 기법을 통해 민주주의의 중심인 광주 ‘금난로’의 500년 역사를 보여주는 <아워풋프린팅>(백호암), 설치작품과 VR을 통해 자본주의와 종교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최대성당>(김원화), 2D영화 속 극적인 표현을 VR 영화 안에서 어떻게 보여 줄 것인지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한 <의자>(정범연), 난민들의 현실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난민>(Edurado Hernandez)을 만나볼 수 있다.

     

    각 작품들은 전시팀 자원활동가들의 안내를 통해 체험이 가능하다. 관객들은 생소한 VR 작품 체험에 낯설어했으나 신기해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전시를 찾은 한 관객은 “VR 작품은 처음 경험해보았는데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어서 신기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전 세계 미디어아트작품들을 공모해 선정된 작품을 소개하는 [글로컬구애전X]가 열렸다. 총 11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으며, 전시는 총 2층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1층에는 6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자전적 기억과 상상을 9개의 이야기로 표현한 <하늘에 딩동댕동 손가락비행체들>(백기은), 대화를 통해 우리가 내재적이라고 생각하는 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부 차>(설수안),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현장과 한국 미군기지 영상을 통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는 <헤노코>(윤지운), 불균형이 극대화된 상황 속 ‘한국 난민’ 이야기인 <한국난민캠프: 불완전한 시공으로 사라진 개인>(차지량), 건널목 폐쇄 이야기와 두 청년의 이야기로 ‘나눔’에 대한 연관성을 말하는 <마구리쌓기: 사랑을 나눕시다>가 벽면을 둘러싸고 있다. 또한, 전시장 가운데에는 온-오프라인 공론의 특징을 게임의 형태로 재현한 <NPC Tutorial>(홍민기)가 커다란 야자수 모형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B1층에는 사회시스템과 개인의 의사소통 오류를 보여주는 <숨바꼭질: 접촉>(기훈센),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를 전하는 <Die letzte Nacht: 마지막 밤>(장연호), 붉은 방을 통해 공간적인 정착과 자아의 정치구조 등을 표현하는 <붉은 방>(정희정), 초콜릿 회사 허쉬의 아동노동착취를 비난하는 <스윗앤스윗>(유소영), 중국 고대 일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안녕에 대한 환상과 그 이면의 경쟁이 교차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북이 수프>(심동수)을 만나볼 수 있다. 영상뿐만 아니라 작품의 감상을 돕는 다른 소품들도 같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트스페이스오에서 열리는 [홍이현숙 작가전X: 수행의 간격]에서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이현숙 작가의 작품 7편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수행’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지녔으며, <날개>를 제외한 6개의 작품 속에서 홍이현숙은 아줌마를 표상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퍼포먼스를 한다. 전시장 입구 왼쪽 벽면부터 <북가좌 엘레지>, <날개>, <구르기>가 순서대로 벽면에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사라지다>와 <폐경 폐경 1.2>가 전시되어 있는데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폐경 폐경 1.2>의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시장 왼쪽 앞부분에는 위안부 문옥주 할머니를 위로하는 <조촐한 추모>가 재생되고 있다. 전시장 입구 맞은편 상단에 ‘한마리 뱀이 되어 혀를 날름거려. 자유로운 꼬리를 휘두르며, 나는 이제 떠난다. 호오이 호오이.’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다. 이 글귀는 <조촐한 추모>에 등장하는 문구로서 전시장과 작품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든다. 전시장 오른쪽에는 ‘광화문 광장’을 사람들이 다층적 공간으로 만드는 모습을 표현한 <광화문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전시장 중앙에선 작가의 이전 작품과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전시장은 전시장끼리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 안에 모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도슨트 전시 해설은 [버추얼리얼리티아트특별전X]은 상시, [글로컬구애전X]은 오후 2시, 4시, [홍이현숙 작가전X: 수행의 간격]은 오후 3시, 5시에 만나볼 수 있다.

     

     

    취재 | 이은아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

     

     

     

  • [GT] 뉴미디어 대안영화 장편2 <통영가족의 시베리아 횡단기>
    NeMAF 조회수:2452 추천수:8
    2017-08-20

     

    8월 19일 낮 12시, 탈영역 우정국에서 <뉴미디어대안영화 장편> 중 하나인 늘샘 감독의 <통영가족의 시베리아 횡단기>가 상영되었다. 97분간의 상영이 끝나고 영화평론가 변성찬의 사회로 늘샘 감독과의 GT가 진행되었다. 감독과 사회자, 그리고 관객들은 서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통영가족의 시베리아 횡단기> 때문에 찍기 시작한 게 아니고, 오래 전부터 촬영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별히 가족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늘샘: 언젠간 가족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여행을 가게 됐었고, 가족들이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데 그걸 묶어서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초반에 주인공들 소개할 때 별명 같은 걸 소개하는데, 아버님께 장돌뱅이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늘샘: 아버지가 어릴 때 바닷가 옆에 있는 시장에서 자라셨어요. 아버지가 시를 쓰는 내용도 주로 통영 바다 시장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통영 시장 문화가 중심이 되는 것 같아서 통영 바다 시인이라고 할까 하다가 좀 더 특색을 잡으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아버지께서 장돌뱅이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게 썼습니다.

     

     

     

    음악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어요. 요즘은 영화에 음악 쓰기가 힘들고 어렵잖아요. 남용이라고 느껴질 만큼 풍부하게 많은 곡을 사용하셨어요. 그 곡들은 어떤 곡들인가요?

    늘샘: 동생이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다가 스물한 살 때 여행을 가서 태국에서 집시밴드를 하게 됐어요. 그때 집시밴드에서 만든 빠른 노래가 중간에 들어가게 됐어요. 또 할아버지 같은 일본 히피를 만나서 같이 공연하러 다니면서 2015년인가에 앨범도 만들었거든요. 그때 아저씨와 만든 노래가 코러스가 들어간 노래들이에요.

     

     

     

    관객1: 영화를 만드는데 어느 정도 걸리셨는지 궁금합니다.

    늘샘: 그 장면이 왜 들어갔나 싶은 게, 예슬 인터뷰 나올 때 갑자기 눈이 오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통영의 눈이 그렇게 많이 쌓이는 건 동생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보통 유럽 영화 보면 어릴 때 8mm로 찍은 게 많이 사용되잖아요. 전 당시에 카메라는 없었으니까 그런 것까지는 없고, 중학교 삼학년 때 처음 카메라를 잡아서 찍었던 거예요. 촬영본 자체는 10년, 20년 된 거고 기획해서 편집하는 건 2016년 여행을 할 때쯤이에요. 중간에 들어가는 글은 어머니가 쓰시기도 하고. 휴대폰 촬영본은 일상에서 찍었던 걸 썼습니다. 편집은 한 5, 6개월 걸렸던 것 같습니다.

     

     

     

    방금 소스 이야기를 하셨는데, 앞부분에 어머님, 아버님이 과거 이야기 하실 때 사진을 사용하셨잖아요. 가족사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료들, 특히 통영 관련 자료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늘샘: 아버지인 정규 씨가 통영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고, 젊었을 때 독서인 모임도 하셨고, 그런 쪽으로 축제기획도 하셔서 자료를 많이 모아 놓으셨어요. 그리고 주변에 계신 사진작가분들이 사진전 하실 때 찍으신 지역 사진들도 이용했습니다.

     

     

     

    감독님 이전 작품들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가족 얘기를 오랫동안 만지작만지작하다가 만들었는데, 결국엔 또 일종의 여행기가 된 거잖아요. 감독님의 화법이나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있어서 계속 로드무비 식으로 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늘샘: 아직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걸 고민하고 있고, 아직 작가라고 하기가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싶고, 일상에서 살면서 혹은 출퇴근하면서 관전 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튼, 여행이 조금 특별한 시간이니까 더 담고 싶었던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여행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관객으로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한기행-삶의 사람들>에서 남한을 여행하셨고, <늘샘천축국뎐>에서 아시아투어를 하셨고, 이번에 시베리아 횡단을 하셨는데, 그 다음은 세계일주인가? 인터뷰에서 동생이 처음 여행을 했다는 코스가 <늘샘천축국뎐>에서 실제 감독님이 했던 코스랑 겹치는 것 같아요. 순위로 따지자면 누가 먼저인가요.

    늘샘: 동생이 먼저 했었고요. 이십 대 초반에 히피 같은 친구들이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는 걸 보면 ‘부럽다, 좋겠다’ 생각만 들었는데, 동생이 이백만 원 들고 이년 넘게 살다 오니까 ‘이게 뭔가 돈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까운 사람이 하니깐 더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어릴 때부터 세계여행을 꿈꿔왔어요. 요즘엔 가기 쉬워졌지만 상품화된 여행보다는 길게 오지 같은 곳을 가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습니다.

     

     

     

    관객2: 영화 앞부분 인터뷰 내용에 대해 궁금합니다. 가족의 인터뷰 내용이 굉장히 사적으로 구분되어있다고 느꼈어요. 아버지, 어머니 경우엔 지금 가족이 형성되기 이전의 개인 사례라든지, 동생이 혼자 외국 여행 갔을 때 얘기처럼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적인 개인사를 구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부분에 많은 비중을 두며 네 명의 인터뷰를 순서대로 배치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늘샘: 중간까지는 계속 인터뷰가 이어져요. 저는 통영과 가족에 대한 내용을 앞에 담고자 했어요. 가족의 삶이 통영 바다 이야기랑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어장 이야기나 시장에서 자란 이야기들로 지역성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녀들 이야기는 살아온 역사가 길지 않아서, 굳이 돈도 없는데 왜 계속 음악이나 영화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해 담고 싶었어요. 제 인터뷰는 사실 이전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고민을 얘기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때 그 후배 작품에서 했던 인터뷰예요. 나머지 가족 인터뷰 내용은 이번 작품을 위해 찍었던 것들이에요.

     

     

     

    어머님이 하시던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늘 해주시던 얘기인가요? 아니면 인터뷰를 통해서 처음 듣게 된 사실인가요?

    늘샘: 평소에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어요. 저도 시간 내며 들었던 건 처음이었고, 예전에 얼핏 들었던 걸 바탕으로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약간 이중적인 느낌이 들어요. 요즘 흔히 가족다큐멘터리, 사적 다큐멘터리의 시작 계기가 대게 가족의 큰 상처와 갈등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가족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 같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전혀 갈등은 보이지 않고, 그동안 관객으로서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자유롭다, 찌들지 않았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기존의 감독님 영화의 프리퀄을 보는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어떻게 가족의 관계가 저렇게 좋기만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늘샘: 저도 어머니가 하시는 ‘자비경’이나 일기처럼 쓰시는 말이 낯간지럽고 공감을 못 할 때도 있어요. 특별히 가족 간의 큰 상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여행 중 사소하게 다툼은 있었지만, 큰 부딪힘은 없었어요. 예전에 어머니가 크게 아픈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무력하거나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아픔은 이번 작품이랑 뭔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고… 가족 네 명 다 자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지향하는 길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도 돈이나 직장 같은 얘기를 저희한테 안 하시다 보니까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작품활동 꾸준히 하는 편이세요.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도 있으시나요?

    늘샘: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제가 2002년에 서울에 처음 와서 자원봉사활동을 했던 게 여기 네마프예요. 감회가 새롭네요(웃음). 아직도 하나 끝나고 나면 정체되는 느낌이고, 막막하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느낌은 갖고 있어요.

     

     

     

     

    기록 | 이은아 루키

    사진 | 변지혜 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