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토요일 오후 8시.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상영된 [대안 장르2: 애니다큐 - 단편2]를 보고 왔습니다.
빨간 구멍 ,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숲으로 날다, 아이랜드식 가구재활용, 고래 이야기, 교토 여행, 여행지에서 만난 얼굴들, 위장, 숲의 중얼거림, 관타나모 수용소: 단식투쟁, 샤라프 의 총 10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 작품으로 묶여서 상영됩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들이였는데요. 그 중에서도 첫번째 두번째로 상영되는 작품인 "빨간 구멍"과 "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숲으로 날다"의 감독님이신 서영주감독님을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해보았습니다.
Q."빨간 구멍"과 "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 숲으로 날다" 어떻게 기획하셨는지 궁금해요.
A.빨간 구멍은 작년에 만들었고 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 숲으로 날다는 2003년도 작품이에요. 두 작품 제작기간 상의 차이가 10년 정도 나요. 개인적으로 처음에 2D영상으로 출발을 했는데 점점 실험적인 영상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지금 현재는 프리프로덕션 단계가 없이 즉흥적으로 한다거나 우연한 효과들을 토대로 작업하는 걸 재밌어하는 편이예요.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이 달라진 것 같아요. 빨간 구멍은 10년 전에 어머니가 웹캠을 통해서 저에게 연락을 하셨는데 저는 스피커가 없는 상황이었고, 언니가 저에게 전송을 시켜줬어요. 그걸 제가 컴퓨터에서 파일로 재생을 하고 비디오카메라로 다시 찍어서 만들었던 footage였어요. 구멍이 나오는 빨간색 배경은 16mm 필름 리더를 끊고 만지고 덧붙이고 해서 인위적으로 합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디지털 첨단매체를 통해 웹핑으로 전송된 이미지라는 건 실시간성과 상호작용이 강조되는 시스템이잖아요. 근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학적이나 관음증적으로 영상을 반복 재생하게 됨으로써 편집증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또한 여성과 구멍의 이미지를 결합함으로 느껴지는 새디즘과 마조히즘적인 느낌도 기대했던 것 같아요.
Q. 어머니라는 이미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주는데 어떤 의도로 그것과 상반되는 강렬한 음악이나 빨간색의 가학적 이미지를 결합하셨나요?
A. 첫 번째는 취향인 것 같아요 너무 예쁘거나 이런 이미지를 저도 좋아하지만 예쁘게 보여주는 것엔 관심이 없고요. 어머니를 소재로 사용한 이유는 대표적인 이미지인 모성이나 여성이라는 부분을 연결시키면서 생각을 하다보니까 사용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것이 처음엔 무섭게 보이고 방해가 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텅 비었다고 생각했던 구멍을 통해서 빛이나 어머니, 다른 이미지가 보이면서 그 부분이 결여나 결핍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만들게 됐어요.
Q. 만드시는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부여하는 주제가 있나요?
A.관심사가 요즘은 계속 변화하고 있긴 한데, 특히 '기억'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기록영상물 footage들을 모으고 있어요. 각종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도 관심이 있고요. 애니메이터의 신체적인 몸과 수행성들을 통해서 작품에 발현되는 잠재적인 이미지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Q."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 숲으로 날다"는 선은 단순하지만 사운드가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이 작품들의 사운드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A.사운드를 따로 채집하지는 않았고요. 그냥 여행하면서 찍은 비디오에 함께 녹음된 사운드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그림을 몰핑이란 방식으로 연결을 시켰는데 완성하고 나니 음악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제가 직접 피리도 불고 내레이션도 해서 녹음했습니다.
Q."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 숲으로 날다"에 등장하는 시의 작가분과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A. 여행을 함께했던 친구가 아는 지인분이셨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시던 분이셔서 그 분 집에서 머물다가 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그 때 영화 속의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Q."샌프란시스코 갈매기 조개 숲으로 날다"에서 이미지 연결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A.작품 완성도는 사실 맘에 안 들어요. 첨에 기획을 하고 간 게 아니라 여행을 다녀와서, 그 곳에 대해 좋은 인상이 있었기 때문에 남기기 위해 그림으로 그렸어요.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몰핑 기법을 사용해서 그냥 연결 시켜봤어요. 자체에 구도라든지 느낌 같은 부분에선 아쉬운 게 많아요.
Q."빨간 구멍"을 보면 디지털매체와 아날로그 필름의 조화가 인상적 이예요. 요즘처럼 급격하게 변해가는 디지털 매체의 변화과정과 필름매체가 서서히 사라지는 풍토에 대해서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 같은 경우에는 아날로그 필름과 디지털 매체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흔히들 말하는 디지털매체가 등장하면서 예전의 아날로그는 아예 단절되는 것이냐 했을 때, 제 생각엔 단절된 것이 아니고 둘 다 연속적으로 변화하며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파운드 footage에 관심이 많으셔서 수집하신다고 들었는데 자료를 관리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즐거운 점이 있나요?
A. 디지털 자료 같은 경우는 단순히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모으는 거예요. 그래서 애틋한 느낌들은 안 들더라고요. 그런데 16mm필름 같은 경우에는 경매를 통해 사게 되는데 일부러 더 오래되고 빛이 바랜 것들을 사려고 해요. 끈적끈적한 필름 캔을 개봉해서 프로젝트에 넣고 어떤 영상이 나올까 기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장이라도 날까 걱정하고 하는 과정에서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Q. 향후 활동계획은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A. 지금 소장하고 있는 파운드 footage들을 가지고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드로잉 애니메이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그리고 아주 예전부터 생각했던 소잰데, 저희 부모님계서 피란 나오셔서 실향민이시거든요. 그 주제를 다뤄서 작업하고 싶어요.
진행 프로그래머 정혜영
기록/편집 전진현 김성경
안녕하세요! 네마프 홍보팀입니다.
8월8일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영화 51+ GT(감독과의대화) 가 있었습니다.
Q.영화를 보면 굉장히 세밀한 감정이나 사건에 대해서 잘 잡아낸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촬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A.정용택 감독(이하 정) : 홍대 근처에서 살고 있다. 지리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밀착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촬영분량이 많이 나왔다. 촬영만 3년 넘게 했고 직접 촬영한 것 말고 자료들까지 다 합치면 1시간짜리 테이프 600개 이상 이었다. 편집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자료를 다 보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Q.촬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정 : 두리반 식당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연남동에 살고 있었다. 2010년도쯤에 당시 오세훈 시장이 차이나타운을 만들겠다고 재개발을 하겠다고 말해서 내가 사는 일대가 철거가 되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두리반이란 곳을 신문에서도 보고 지나다니면서도 봤다. 글을 쓰신 것도 보고 두리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료 조사 중에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한밭씨가 그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단 소식을 듣고 가서 첫 촬영을 하게 되었다.
Q. 홍대 쪽 재개발에 관련해서 물러설 수도 있었을 텐데 두리반 같은 경우에 목소리도 크게 내셨다. 덕분에 두리반이 홍대 앞에 있는 어떤 상인 분들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끝까지 농성하게 된 이유는?
A.안종녀 사장(이하 안) :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 상인들에게 높은 월세나 보증금을 요구했다. 거기다 마포구청에서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세입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재건축으로 상인들을 쫓아내고 강제집행을 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자존감까지도 완전히 떨어졌다. 우리는 그렇게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저항을 시작했다. 이렇게 일이 크게 될 줄은 저희(두리반을 운영하는 부부)도 몰랐다. 뮤지션들이 와서 음악을 하게 되면서 비폭력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으로 싸웠고, 결국 이기게 될 줄은 몰랐다.
Q. 자립음악가들이 두리반에 대해 알게 된 계기와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박다함 조연출(이하 박) : 저 같은 경우는 2010년에 처음 가게 되었다. 사실 한밭씨가 공연한다는 포스터를 봤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음악회를 계속 한다는 것을 보고 4번째때 같이 참여하겠다. 이야기를 했고 한밭씨와 같이 고민하고 있던 상황들. 이를테면 재개발 문제와 가난한 인디뮤지션들이 홍대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 저희는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것뿐이다.
Q. 기존에 있는 인디밴드와 자립음악의 차이는?
A.박 : 인디음악이 유명해지면 인디보다 더 매니악한 장르를 공연하던 공연장도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홍대 지역의 임대료가 너무나 비싸져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공연장들만 살아남았고 티켓파워가 있는 가수들만 공연장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본으로부터의 자립을 선언하는 가수들이 자립음악가이다. 그러나 명확한 구분은 지을 수 없고 다만 시기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Q.인디밴드들이 음악을 하겠다고 농성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과 농성을 함께 하면서 두리반 사장님 내외분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
A.안 : 가게에 쫓겨나고 농성을 시작했을 때 인디음악 사실 전 하나도 몰랐다. 기획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두리반이라는 장소에서 인디음악가들과 그들의 팬의 유대가 커졌기 때문에 용역들이 함부로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Q.영화 중간 눈물을 흘리는 사장님의 모습을 봤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A.안 :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립음악가 여러분들께서 함께 싸워주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에 방문해주셨고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셨다. 우리도 그분들의 노력에 부응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었고, 더욱 힘을 얻어서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것 같다.
Q.명동이나 정치적인 공연에 대한 섭외가 들어왔는데 뮤지션들의 태도가 두리반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들과 두리반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A.정 : 두리반이 끝나고 나서 두리반 말고도 다른 철거현장이 있으니 제2의 두리반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했던 음악가들과 젊은 애들이 많이 갔었다. 홍대에 있던 두리반과는 달리 거리가 있어서 일상적으로 상주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오랫동안 그런 농성을 함께 하다 보니 피로감이나 매너리즘 같은 게 좀 있었다. 두리반은 아티스트들이 공연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찾은 장소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행사들은 비자발적인 행사다 보니 의도치 않은 상황도 생겼고, 조합원들 간의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Q.왜 예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소외가 될까? 현대사회는 예술인들의 노동력의 대가가 적게 측정되는 사회이다. 부분에 대한 변화를 가지려면 어떻게 변화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A.박 : 저희가 사실 자립이라는 말을 계속 하는데, 우리도 합리적인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시도 중이다. 적게 벌어서 적게 산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음악 자체가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출이 10이있으면 가능한 예산 범위 안에서 작업하는 게 맞고 다시 채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Q.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 주세요.
A.정 : 51+가 극장에 개봉을 하려면 홍보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그걸 마련하지 못해서 개봉 못하고 사라질 상황에 처했었다. 그런데 다행히 최근에 영화진흥위원회의 개봉지원금을 받아서 12월 달에 극장개봉을 할 예정이다. 그간 다른 촬영이나 편집이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세간의 관심에서 꽤 멀어졌었는데 다시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서 주변에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글 뉴미디어루키 김성경 전진현
8월 8일에 미디어 극장 아이공에서 열린 <글로컬 단편 구애전1> 황규일, 고병준 감독님 GT에 다녀왔습니다!
글로컬 단편 구애전1은 춤, 귀머거리와 바람, 아라비아인과 낙타, 우유 배달 가는 길, 오점 없는, LightRhythm #1-3 의 6개의 작품으로 묶여서 상영되었습니다. 그 중 [춤]을 제작하신 고병준 감독님, [귀머거리와 바람]을 제작하신 황규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Q."귀머거리와 바람"의 황규일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귀머거리라는 소재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고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사운드작업은 어떤식으로 하셨는지, 그리고 작품 의도가 있다면?
A. 황규일 - 작품 의도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년이 바람을 쫓는다." 입니다. 영화 속 내내 상처와 시간의 관계에 집중을 해서 이 두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소리 디자인은 제가 거의 다 혼자 작업했습니다. 폴리를 따로 하기 보다는 주인공이 닫힌공간에서 열린공간으로 나갈때 최대한 층위를 여러개로 나눠서 공간에 따라 다르게 사운드 표현을 했습니다. 닫힌공간에서는 최대한 먹먹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기차가 지나갈때도 마찬가지구요. 바깥공간 같은 경우엔 반대로 시원하게 새도 지저귀고 시원하게 디자인을 했습니다.
Q."춤"을 작업하신 고병준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내러티브가 없는 작품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내러티브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싶은 작품이었는데요. 혹시 작품에 내러티브를 담을 의도가 있으셨는지, 표현하신 기법이 로토스코핑 같은데 맞나요?
A. 고병준 - 사실 내러티브는 따로 없습니다. 음악을 먼저 듣고 콘티없이 무작위로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에서 제가 의도한 것은 현대사회에 살면서 사람들의 소외된 계층과 소외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음악이 흐르는대로 제가 기억하고 있는 정서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제 자신이 모델이구요. 예술이라는게 제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제시해준다기 보다는 개방적인 사고 영역에서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각자의 생각을 품고 느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법은 로토스코핑이 맞습니다. 혼자 2년동안 작업을 했어요. 초당30프레임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프린트로 출력하거나 모니터에 대고 바로 그린겁니다. 완벽한 수작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2년동안 총 2만장정도를 그렸다고 볼수 있습니다.
Q. 고병준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영화 처음에는 남자가 한 명이 있다가 중간부턴 두 사람이 같이 추게 됐는데, 똑같은 인물이 두 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고병준 - 사실 두 명 다 저를 모델로 한 사람인데요. 저와 또다른 저라고 보시면 되는데, 두명이라는게 별다른 큰 의미는 없습니다. 굳이 두명일 필요는 없었지만 화면 구성상 두명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넣게 된 이유도 있구요. 처음에 검은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이 양복정장자켓을 입게 되는데요 두가지 내면에서 저의 내면 자유의지를 확실하게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넣고 싶었구요. 관객들에게 저의 성찰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양복을 다시 벗어요. 그렇게 제가 큰 노력을 해봤자 사회 자체에서 소시민의 조그마한 분출일 뿐이지 그게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이 될수없다는 것을 인지한 후 다시 소시민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Q.황규일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영화 중후반에서 달동네에 살던 소년이 지구의 끝에서 지구의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소년이 나이가 들어버린 할아버지가 되는데, 이 부분은 어떤 의도가 담겨있나요?
A. 황규일 - 사실 작품 전반적으로 과장과 비약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구 중심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시간이 더디 흘러간다는 건 과학적인 말이라고 해요.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요. 그 말을 많이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 끝에 있는 한 소년이 평지로 내려간다는 컨셉을 담았구요. 첫번째 컨셉은 원래부터 소년은 할아버지였다라는 컨셉과 다시 올라왔을 때는 시간이 그만큼 많이 흘렀기 때문에 소년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라는 컨셉 이렇게 두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를 닫아두지 않고 각자 한사람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여지를 많이 열어놨어요. 그래서 해석이 다양하게 될 수 있는것 같습니다.
Q. 달동네에 기차가 지나간다는 설정같은 불가능한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A. 황규일 - 저는 바람이나 소리같이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을 했습니다. 소년이 바람이나 소리는 들리지 않더라도 진동으로만 보는것과 진동으로만 느낄수 있어요. 때문에 기차소리를 이용해서 바람소리를 더욱 강조하고 싶었어요. 소년이 혼자 떨어져있기 때문에 밖에 지형들이나 구조물들이 계속 자기를 위협하는 것들이 소년을 더 고립되고 외로워보이도록 공간 설치를 제 나름대로 했구요. 누구나 사랑을 하고 그거에 대해 상처받잖아요. 이 소년은 가족의 사랑을 받지못해 그것에 대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귀머거리와 바람"은 제작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A. 황규일 - 제가 이 영화제에 원래 2년전에도 한번 다른 작품을 들고 왓엇는데, 그 작품보다 전에 만든거에요. 이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 단편을 3편을 찍는 기간동안 애니메이션은 이 작품 하나 했어요. 27살때부터 저 애니를 시작한건데 게을러서 완성하는데 5년이 걸렸어요. 놀면서 슬슬하느라 시간이 많이 더뎌졋어요.
작품 계획과 시나리오는 금방 완성했어요. 20대 중후반에 이야기를 써서 30대초반에 끝낫는데, 그때 그 감성을 따라갈수가 없게 되더라구요. 제가 썼던 작품세계가 아이러니한 부분도 많고, 그래서 30대 초반의 감성으로 이야기를 바꿔야 하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결국엔 그 때 그 감성을 가지고 작품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서 약간의 수정을 제외하고 거의 그대로 사용했어요.
Q. 두 감독님 모두 실사 영화도 작업하셨고 애니메이션 작품도 하신 것 같은데,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고병준 -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 보다 로트스코핑 방법을 선택하면 확실히 더 오래걸리긴 해요. 일반적인 방식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춤이라는 소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어려운 방식을 선택했어요. 드로잉을 일일이 목탄 잉크 먹물 디자인을 한거에요 표현주의적 기법이기 때문에 우연성을 가미를 했어요. 조형적으로 멋있기도 하고요. 솔직히 말하면 다시 이 방식으로 작업하고 싶진않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황규일- 사실 저는 애니메이션 작업한 게 저것밖에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요. 너무 오래걸리고 힘들어서 지금은 실사 영화 쪽으로 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Q. 황규일 감독님 20대 중반과 30대 초의 감성이 많이 바뀌셨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A.황규일 - "귀머거리와 바람"은 내러티브적 요소보다는 20대 중반 제가 느꼈던 감정을 소년에게 이입하는데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때문에 30대가 되어버린 후에는 시나리오의 플롯 구성이나 내러티브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나니 예전에 제가 썼던 작품의 헛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그때의 순수한 감정이 많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지? 싶어서 당황스러웠던 부분도 있었어요.
Q. 향후 계획은 어떠신가요?
A.고병준 - 요즘은 애니메이션 작업 안하고요. 회화작업 하고 있어요. 전시기획하고 있습니다.
황규일 - 애니메이션은 시간 되면 또 하고 싶어요. 천천히 하고 싶고 그것보다 더 앞으로 진행해야할 다른 영상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당장은 영화찍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로토스코핑 기법 : 실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하여 각각의 프레임 위에 덧붙여 그리는 기법. 사람이나 동물의 실제 동작을 카메라와 녹화기로 잡았다가 이를 애니메이션 키 프레임으로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실제 동작을 가지고 화면을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화면을 얻을 수 있다.
인터뷰진행 프로그래머 조혜영
기록/편집 뉴미디어루키 전진현 김성경
8월 8일 저녁 8시에 소극장 산울림에서 개최된 <정전 100주면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 + 스페셜 공연> 감독과의 대화를 보고 왔습니다! 요즘 반응이 뜨거운 차지량 감독님이 연출하셔서 더욱 주목 받은 공연인데요. 많은 관객분들이 보러오셔서 굉장히 뜨거운 열기를 실감하고 왔습니다. 정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차지량 감독님과 함께한 감독과의 토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Q. 이 스페셜 공연을 연출하게 되신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작년 백령도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행사에서 영감을 얻어서 이 공연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Q. 주제가 군인과 관련이 있는데 혹시 이 작품은 군대에서 계획하신 건가요?
A. 작년에 생각하게 된 작품이고 군대는 이미 7~8년 전에 다녀왔습니다.(웃음)
Q. 영상을 제작하시면서 퍼포먼스도 같이 계획하신 건가요?
A. 네, 작년 행사를 해보고 연습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하려니 조금 쑥스러웠어요.(웃음)
Q. 이 작품을 다시 상영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정치권 인사들이 정전 행사 등에 오셔서 형식적인 인사를 많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재 상영을 결심했습니다.
Q. 영상 도중에 박근혜 대통령님이 자주 등장하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A. 저는 그분을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존경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웃음)
Q. 예술 하시는 분들이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서 생활이 어려운데 차지량 감독님은 이번에 ‘아트 스타 코리아’로 이름을 알리셨는데 생활이 이전보다 나아지셨나요?
A. 아닙니다. 오늘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로 현수막 제작을 하다가 왔어요.(웃음)
Q. 영상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음악은 직접 제작하신 건가요?
A. 영상이나 미술 쪽 분야만이 아니라 음악까지 같이 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제가 제작한 음반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차지량 감독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차지량 감독님과 함께하는 '감독과의 대화'는 8월 14일(목)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한번 더 이루어지니 이번 기회는 놓치지 말고 참여해보세요!
글 뉴미디어루키 주효진 한귀원
8월 8일에 미디어 극장 아이공에서 열린 <늘샘천축국뎐> 감독과의 대화에 다녀왔습니다!
<늘샘천축국뎐>은 세상이라는 책, 그중에서도 아시아라는 챕터의 여러 페이지를 읽어가는 여행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늘샘 감독님은 중국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254일간 아시아 8개국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다채롭고 생생한 기록으로 담아냈는데요! 여행지 곳곳에서 만난 사람살이의 다양한 풍경, 길 위의 경험 과 성장을 담아내면서 조금 더 넓고 깊어진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청춘의 여행 에세이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영화 관람이 끝난 후 감독님과 영화에 관한 즐거운 인터뷰를 나눠 보았습니다!
Q.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기획의도에 대해 궁금해 졌는데 혹시 여행을 떠나면서 처음부터 영상을 제작할 의도가 있으셨나요? 아니면 여행 도중에 즉흥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게 되신 건가요?
A. 처음부터 여행과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원래부터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떠나지 못하다가 20대 후반인 2012년에서야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이 없이 떠난 여행이라 여행 기간이 어느 정도 될지 생각하지 않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떠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획의도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Q. 작품의 이름이 ‘왕오천축국전’을 본 따서 만드셨는데 다른 여러 나라들 중에 인도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인도였기 때문인데 경로를 따라 가다 보니 라오스를 비롯한 동남아에도 관심이 생겨서 가게 되었습니다.
Q. 이번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촬영과 편집을 혼자서 다 하신건가요?
A. 네, 제가 여행을 떠날 때 삼각대를 미리 챙겨서 대부분 혼자 촬영했습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과정에서는 길에서 만난 친구가 사진을 전공하고 있어서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돌아와서 편집도 혼자 했습니다. 그리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친동생이 제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간다고 해서 제가 나오는 장면을 많이 뺐어요.(웃음)
Q. 영화 내용에서 인터뷰 하신 분들이 많은데 인터뷰 하신 분들은 영화가 완성된 후에 보셨나요?
A. 한국 친구들은 영화가 상영될 때 본 분들도 많으신데 외국 친구들은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좋다는 평 외에는 긴 코멘트는 없었어요.(웃음)
Q. 영화 중간 중간에 음악이 많이 나와서 뮤지컬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음악을 전부 제작하셨나요?
A. 주제곡은 다른 친구가 만들어 주었어요. 나머지 음악은 제가 원래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해서 틈틈이 가사를 써서 음악에 붙였습니다. 기타도 원래는 잘 못 치는데 여행 하면서 기타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Q. 영화 속에 여러 외국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질문을 할 때 언어의 장벽이 있지는 않았나요?
A. 질문할 때 옆에 통역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대부분 의사소통이 되었는데 일본인 친구의 경우는 한국에 와서야 해석해보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했어요.
Q.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여행기간이 9개월 정도 되셨는데, 여행기간이 길었던 만큼 경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경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A. 중국의 경우는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들었고, 인도는 한 달에 20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Q. 촬영 기간이 길다 보니 분량이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편집할 때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A. 분량이 많이 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대부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웃음)
Q. 다음 작품도 여행 다큐로 계획하고 계신가요?
A.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계속 작품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늘샘 감독님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뉴미디어루키 주효진 한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