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의 슬로건으로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이라는 문구가 선정되었다. 올해 주제와 맥락을 같이 하는 작품의 선발 과정에서, 칠레와의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Error Process International Experimental Vidio Festival'와 'INVE'의 14여 편 규모의 셀렉션이 상영작에 올랐다. 칠레 특별전의 경우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1: 기억과 신체의 지평-칠레 동시대 작가전>,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2: 지형도는 오류, 불은 치유, 영화는 연기>,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3: 손을 펼쳐, 돌을 보여줘, 파시즘을 몰아내>의 세 가지 테마로 기획되었다.
'자연'이 뜻하는 바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외부 요소들을 자연으로 간주할 것인가, '우리'를 둘러싼 불가항력적 요소들을 자연으로 볼 것인가. 실은 모두가 자연 그 자체이던가.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1: 기억과 신체의 지평-칠레 동시대 작가전>에서 자연은 우리의 삶 자체이다. 개개인의 자의식은 역사 속에서 교차되며 서로에게 한 획을 긋는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만든 사회에서 추진력을 얻어 생애를 완성한다. 이 양자 간의 관계가 그저 '자연스러움'이다.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1: 기억과 신체의 지평-칠레 동시대 작가전 Focus on Chilean Vidio Art 1
흐릿한 포커스로 도시의 사람들을 천천히 담아내는 카메라. 아침마다 산책을 하는 사람, 매일 저녁 집을 청소하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도로에는 줄줄이 늘어진 차들의 경적소리, 뜨고 지는 해의 모습이 줌 인(zoom in). 마치 이 도시는 반복되는 소리와 일정한 동작들로 반듯하게 짜여 있다고, 그렇게 안심시켜주는 듯하다. 같은 색과 모양의 지붕들이 열을 맞추어 서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따분해 보이는 밤이다.
갑자기 총 소리, 사이렌이 퍼지고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하다. 거리로 뛰쳐나와 국기를 펄럭이는 남자, 아이들을 데리고 피신하는 부모의 모습. 시위를 제지하는 경찰차에 연막탄을 던지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힘껏 내지르는 구호 소리가 축구 경기장의 응원가를 연상케한다. 눈을 뜨면 보이는 풍경은 처참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롭기만 하던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저마다의 무질서한 움직임도 멀리서는 일사불란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침에 산책하지 않는 도시가 찾아왔다. 먼지 자욱한 도로가 적막하게 느껴진다. 도시의 외곽은 중심이며, 그것들은 어딘가에서 날아온 조각과도 같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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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7분가량의 논픽션 다큐멘터리는 평화로운 도시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풍경은 마치 어제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일을 닮은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도시는 한순간에 평화를 빼앗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가 계속해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담아낼 때, 관객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불안이 폭로되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가 공식화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연스러움을 인식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동시대 작가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고모네 집에 방문해 집을 둘러보는 가족들의 모습. 침실, 주방, 테라스 구석구석을 비디오카메라로 담으며 즐거워한다. 20년 된 고모의 반짇고리를 만지는 아이들. 거위를 굽고, 설거지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사랑과 행복은 금방 떠나간다네-' 밖에는 칠레의 정찰대가 군가를 울리며 행진한다. 얼핏 '독재자'와 같은 단어가 들려온다. 삼촌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암전(fade-out). 고모네 집에서 성대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다. 모두가 손을 잡고 춤을 준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친다. '파티 파티 파티를 하고 싶어- 모든 걸 잊고 싶어- 이 파티의 에너지를 봐! 웃어봐! 흔들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아이들.
다음 날 아침, 건물 위 옥상에서 담배를 말아 피는 이웃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온통 핑크빛 지붕으로 줄 서있는 집들을 바라본다. 한 여자가 자신의 집이 며칠 전 불에 탈 뻔했다며 장난스레 이야기한다. 담배를 손에 쥔 남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지붕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연달아 불에 탈까 봐 걱정돼. 방화벽을 세우던가 해야지." 하고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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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단란한 가족의 일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독재 정치 하의 어느 시점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장치들이 숨어있다. 단순 재해처럼 보이지 않는 화재, 저녁마다 테라스 너머로 보이는 빨간 불빛들은 불안한 마음들을 반영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 가사들이 인상 깊다. 동일한 규격으로 줄을 맞춰 서 있는 분홍 지붕이 이질적이다. 집 밖의 분위기가 썩 좋지 않지만, 살아왔던 터전을 결코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쩌면 집 짓는 방법은 이상적인 거주 양식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집의 중심이 되어 보호받으면서도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걷고 있는 장소를 절대 떠나지 마시오, 프레임 내에서 원이 되어,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머물러서 그곳을 전용하라. 그 목소리와 몸짓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칠레 비디오예술 특별전 1: 기억과 신체의 지평-칠레 동시대 작가전>
[기획] 자아(self)와 세계(world) End.
글 홍보팀 천가민 ALT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