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Inter-view
홈 > 대안영상예술 웹진 >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ALT INTER-VIEW X TITLE 인터-뷰 X 타이틀

  • [20131020] 뉴미디어루키 인터뷰 - 서울아트시네마
    NeMAF 조회수:2605 추천수:25
    2013-10-21

    네마프2013에 함께하게 된 세 명의 젊은 루키들을 만나봤습니다서울아트시네마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상영관지기김민지이유진이형인 루키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관객들의 표를 관리하고 상영관 내·외부를 정리하는 등 영화제의 원활한 진행을 돕고 있는 분들입니다그럼세 명의 루키 분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네마프 자원활동가로 활동하시게 된 계기를 듣고싶어요.

    A

    이형인 루키영화를 워낙 좋아해서이전에 영화제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그때 알게 된 분께서 네마프에서 한 번 활동해보는 건 어떠시냐며 권해주셔서 지원하게 됐어요이번년도가 졸업반이라 활동을 안 하려고 했지만새로운 활동을 하며 생동감을 느끼며 자극을 받고 싶기도 했구요.

    이유진 루키평소 ‘씨네21’ 웹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요들어가서 재밌는 기사를 읽기도 하지만영화와 관련한 활동이 있는지 공지를 찾아 읽기도해요네마프의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공지를 통해서였죠.

    김민지 루키저 또한 ‘씨네21’ 웹사이트를 통해 네마프의 모집 공고를 알게 됐어요제 전공이 문화컨텐츠학이라 영화 공부를 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영화관련 활동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그래서 공고를 보고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 지원하게 됐습니다.

    활동을 하며 느끼신 점을 듣고 싶어요.

    A 이형인 루키참 좋은 영화제인데홍보가 잘 안된 것 같아요관객이 많이 없어 아쉽습니다영화제를 여는 이유가 관객들과 소통하고감독님과 만나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 위한 것인데찾아오시는 분들이 적다는 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유진 루키개인적으로는 활동을 통해대안영화를 하시는 감독님들을 많이 만나 뵙고 싶었는데생각보다 그분들과 깊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그게 아쉬워요.

    또 저는 통역을 맡고 있는데미숙한 부분이 많아요영어능력이 아주 높은 것도 아니고이전에 통역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통역을 하다가 당황한 적이 있었어요직역을 하다 보니 원활한 통역이 되지 못했죠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다면통역을 할 때 관객 분들께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이런 점도 아쉽더라구요.

    김민지 루키 10월 22일에 ‘네마프포스트미디엄 시대 대안영화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포럼이 있어요주제가 흥미로운데여러 전문가 분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네마프에 기대하는 점은요?

    A

    이형인 루키상영관지기다보니 몇 번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봤는데표현 방법에 있어서 색다른 영화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앞으로도 계속 색다르고 독창적인 표현을 하시는 젊은 감독님들의 다양한 컨텐츠를 만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지 루키:

    먼저는 홍보가 더 필요할 것 같아요또 행사의 규모를 명확하게 하는 것도요페스티벌이 겨냥하는 대상이 구체적이지 못해서 홍보도 덜 되고규모도 애매모호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리고 앞으로도 네마프가 대안영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음합니다.

    글, 사진 뉴미디어루키 최한나

    * 왼쪽 이형인 루키, 오른쪽 상단부터 이유진 루키, 김민지 루키

  • [20131020] 영화제 - <서울역> 작품 리뷰
    NeMAF 조회수:2852 추천수:27
    2013-10-21

    10월 20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서울역>이 상영됐습니다더불어 상영 후에는 배윤호 감독님과의 대화시간도 마련돼 못 다한 얘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역>은 구 서울역이 전시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서울역이 전시관으로 탈바꿈한다.’는 이 간단한 말 한마디에간단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구 서울역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일에 참여한 많은 노동자의 사연이 바로 그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복원사업’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포괄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삶이 <서울역>에 담겨있습니다임금으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곁을 떠난 자식에 서운해 하기도 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바로 그것이지요. 00건설이 세운 아파트, 00시의 복원사업이라고들 많이 말하지만사실 ‘00’라는 대표는 허구적인 것입니다복원과정의 ‘녹록치 않음’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이러한 이유로, <서울역>은 성과결과의 이면에 있는 ‘녹록치 않은 살아냄’의 과정을 대변하려 했습니다.

    작품을 만드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근대문화유산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입니다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이곳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됐어요빨리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이요그래서 이런 모습들을 서울역을 무대로 한 동화 같은 이야기로 담아보고 싶어졌어요원래 다큐를 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지요.

    구 서울역은 현재 전시공간이 됐습니다전시공간이 되기 전에육체노동자 분들을 담아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현재 조선소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준비 중에 있어요조선소에 계시는 노동자 분들의 이야기요생각해보니 제가 노동에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반복된 생활 속에서 단순 작업을 하시며 우리 삶을 바꾸고 지탱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 같은 거요그렇다고 노동자 입장에 서서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에요단순히 노동자라기보다는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그분들께서 구체적으로 행동하시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세월이 지난 후엔노동을 하는 모습 자체도 박물관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지금 우리는 뭐든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노동과 같은 과정을 잊어가는 것 같아요.

    원래 구 서울역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는지요또 그 이미지는 다큐를 만드시며 느끼신 구 서울역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요.

    이 작품은 좀 큰 계획을 설계하다가 바꾸고 시작한 영화입니다촬영기간은 일 년 반 정도후반작업은 일 년 정도가 걸렸습니다처음에는 전후복구 현상이나 건축방법 등에 대한 자료를 조사했어요그러다가 조사가 시간 속으로까지 깊어졌지요땅을 파고 이야기하다보니 깊은 이야기가 나왔어요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작품의 방향을 바꿨습니다책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파고들다보니 근거가 약하더라구요서울역 도면은 1920년대 루체른 역을 보고 카피한 건데이런 자료도 중요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땅 밑의 이야기나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중요해집니다사람들도 계속 변해가는 과정에 있구요조선소 다큐를 찍고 있는데과거에는 휴대폰을 쓰는 노동자층이 없었지만지금은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합니다제가 관심 있는 주제는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담고 싶은 욕망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시고 영화를 구상하셨는지.

    내레이션이 없어서관객 분들께서 지루하셨을 지도 모르겠어요내레이션을 없앤 이유는 오랜 뒤에 시대와 시간을 얘기할 폭을 넓히기 위해서 입니다. <서울역>이 오랜 시간 관찰대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메시지 전달도 최대한 억제하려고 했습니다시·공간을 뛰어넘은 해석코드가 영화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글 뉴미디어루키 최한나

  • [20131019] 영화제 - <옴니버스 에세이 시네마+글로컬 파노라마> 작품
    NeMAF 조회수:2904 추천수:22
    2013-10-20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옴니버스 에세이 시네마와 글로컬 파노라마 단편선이 상영됐습니다.

    상영작으로는 옴니버스 에세이 시네마의 임창재 <In Dreams>, 하준수 <Opening day>, 김소성 <화분을 치우러 간 사이>가 글로컬 파노라만 단편선 중에는 이제희 <리나>, 페르난도 비소키소 <리스크-노이즈>, 시리악 해리스 <위 갓 모어>, 리금홍 <치니네르힌베?-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가 있습니다.

    상영이후엔 객원프로그래머 유지수 님의 진행으로, 임창재, 김소성, 이제희, 리금홍 작가님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리나>의 촬영을 맡아주신 박정심 님께서도 함께해주셨습니다.

     

    김소성 <화분을 치우러 간 사이>

    Q 자전적인 작품이신지요.

    A 제가 작년의 쓴 일기 중의 하나를 약간 수정해서 만든 것이니,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에 나오는 그 ‘나’가 제가 맞아요. 그런데 사실 ‘나’라는 내레이터가 불분명한 것 맞는 것 같아요. 의도한 것은 아니구요. 영화 안에 다른 인물이 ‘나’처럼 나와서 혼란스럽긴 하더라구요. 처음에 카메라 안에서 제 목소리가 나오는데,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또 다르고.

    Q 2013 네마프의 개막작으로 만드신 거라면, 뉴미디어를 염두에 두셨을 것 같은데요.

    A 네마프의 의뢰로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관계자분을 만나 뵙고 8월부터 촬영을 시작했어요. 아마도 선정해주신 프로그래머분이나 관계자 분들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하던대로 만들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뉴미디어에 대한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기 보다는요.

     

    임창재 <In Dreams>

    Q 전반적으로 작품을 하실 때 작업의 순서를 어떻게 하시는지. 특히 이번 작품은 어떻게 촬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이번 작품은 네마프와 관련해 의뢰를 받아 기획됐습니다. 에세이 시네마가 익숙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창작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콘티를 초단위로 짤 때가 많습니다. 샷마다 촬영계획을 다 세우죠. 이번 작업은 꿈을 꾸는 과정과 비슷하게 이뤄졌습니다. 시나리오도 따로 없었습니다. 꿈이라는 자체는 잠재된 경험, 기억이 섞여 시공간이 나타나기 때문에 논리나 질서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죠. 촬영 장소들도 어떤 곳은 제가 전에 스쳐간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장소들입니다. 돌아다니다가 거기서 공간이 효과를 주면 제가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식이었어요. 제가 주체가 돼야하지만, 먼저는 공간이 영상의 주인공이 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번 작품은 필름 작업이 아니다보니 촬영 분량이 많았어요. 후반 작업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Q 영화를 보면, 박제된 이미지들이 드러납니다. 실을 계속 감거나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구요. 인간이 소요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요. 감독님께서 말씀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A 꿈은 낮에도 꾸지만, 느낌적으로는 꿈이란게 깊이 들어가는 잠 속에서 눌려있던 것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밤과 꿈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속 몇 가지 오브제들. 실이라든가 박제. 이런 것들을 병치하고 연결시킨 것은 시간과 역사 그리고 공간의 축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추상적으로 보신다면,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일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와 운명이라는게 순화되는 구조가 있거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꿈 속에서 누가 나타나고, 누가 주체인지 대상인지 나중에는 의미가 없어지고 해체되는 것이죠. 이것을 실처럼 꼬아지거나 풀려나는 것과 연관시켜보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희 <리나>

    Q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A 이 작품은 박정심 선생님의 시네마 다이어리입니다. 저는 옆에서 응원해드리고, 선생님께서 찍어 오신 것들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까를 고민했던 사람이에요. 먼저는 자막 끝에도 나왔지만, 이 작품은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이번 상반기에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큐레이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 중 한 작품입니다.(이제희)

    Q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A 보셔서 아시겠지만, 박 선생님께서 굉장히 성실히 찍은 작품입니다. 많은 분량을 찍어 오셔서 편집할 때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상들을 들여다보며 질서를 찾으려 했는데, 후에 이런 저의 노력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게 임팩트를 줬던 것은 리오의 목욕장면 이었어요. 한 시간이 넘는 일이거든요. 그 장면에서 카메라가 초점이 나가면서 소리만 들리는데 거기서 제가 지각하지 못하는 세계를 봤어요. 이걸 관객에게 전달하는게 맞겠다 싶었죠. 그래서 편집과정에서는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는 것에서 장점을 끌어내려 했습니다. 박 선생님께는 이번 작업을 멋지게 해내신 것을 축하드리고, 약속하신대로 이제는 아티스트 박정심으로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이제희)

     

    리금홍 <치니네르힌베?-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Q 왜 이름과 꿈을 물으셨는지요?

    A 먼저는 저는 시각예술을 하는 미술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몽골에서 2주간 작업을 하고 돌아와 미술관에서 설치작업을 같이한 작품입니다. 영상 전공자분들과는 다른게 영상은 제 작업중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A 요즘엔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작업도 하고 책도 씁니다. 작년에는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이름의 서사를 듣고, 그분들께서 친필로 쓰신 이름을 받아 전각도장을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결혼 때문에 이주해온 여자분들을 만나 뵙고 있습니다.

     

    글 뉴미디어루키 최한나

    사진 뉴미디어루키 변진희

  • [20131019] 영화제 - <재전유하는 영상언어 단편2> 작품 리뷰 및 GT
    NeMAF 조회수:2653 추천수:29
    2013-10-20

    10월 19일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는 재전유하는 영상언어 단편2가 Documentary 3작품과 Fiction 1작품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솔직하고도 담담한 스토리전개는 많은 생각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Fiction 작품은 위트와 재치가 넘쳐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김경묵, <나와 인형놀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레고장난감보다 여동생의 인형을 더 탐내고 어머니의 화장대가 놀이터였던 이야기로 시작해 아이들의 놀이가 자아인식을 하는 도구라는 이야기로 담담하게 전개되어집니다. 기존 문화의 규칙과 남과 여의 구분이 뚜렷이 나눠지는 제도에 反하는 LGBT영화입니다.

    김숙현, <모던한 쥐선생과의 대화>는 Essay Documentary로 언어를 이용한 나열과 간단한 문장으로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그림자와 사물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생각을 비트는 시점까지의 전개로 지배권에 대한 강한 재전유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임덕윤,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43>은 일주일에 3일은 혈액투석을 받아야하는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화면구성이 독특한데요, 주인공에게 필요한 사물만 하얗고 나머지 배경은 어두워서 중반부에서는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경험하면서 이해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윤성호,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은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와 영어를 사용하고 자막처리를 하여 언어로서의 이질감이 돋보입니다. 출연자들이 사회에서의 비주류들로 구분되어지는 현실을 위트 있게 표현해 낸 점이 돋보이며 해프닝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전개로 웃으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영을 마치고, <나와 인형놀이>의 김경묵 감독님과 <모던한 쥐선생과의 대화>의 김숙현 감독님과의 GT시간으로 관객들과의 소통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나와 인형놀이>는 사적인 혼란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특히, 영상미가 돋보입니다. 2005년 제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최고구애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는 10년 전 작품을 다시 접한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너무 러프하게 찍힌 영상부분의 장단점을 소담하게 이야기하면서 그 당시 LGBT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다뤄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언어적 소통은 어려울 수 있는 것을 매체를 통하여 고백하면서 이후작업에도 힘이 되고, 현재에도 이 영화를 좋아해주시는 사람들이 많이 계셔서 자신에게는 의미 있는 영화라고 하십니다. 소통의 장이라는 공간이 확보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성매매촌을 주제로 장편다큐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하시네요. 후반기 편집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시는데요, 좋은 작품 기대해봅니다.

    <모던한 쥐선생과의 대화>는 2007년 제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최고구애상을 받은 작품으로 자신이 그 당시에 느꼈던 일을 일기처럼 구성하여 작품화하셨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본인의 작업을 보면서 그때의 에너지가 그립다고 하시네요.

    작품구상 시, 가장 쉬운 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이었고 좋아하는 영화에서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영상언어보다는 텍스트언어가 더 편하다는 말씀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은 개봉영화보다는 실험적인 것을 지향하며 작업 시안 콘티 중이라고 하십니다. 

     

    글 뉴미디어루키 김문영

    사진 뉴미디어루키 변진희

  • [20131019] 영화제 - <왕자가 된 소녀들> 리뷰
    NeMAF 조회수:2948 추천수:25
    2013-10-19

    2013 NeMaf의 슬로건인 ‘대안YOUNG展’은 ‘한국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타자화 되고, 배제, 왜곡되어 왔던 소수자의 영상언어’를 찾기 위해 마련된 영상전입니다. 그런 만큼 ‘대안YOUNG展’에 참여한 여자감독들의 수도 적지 않은데요. 오늘은 그 중 <왕자가 된 소녀들>을 감독하신 김혜정 감독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나 뵀습니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1948년에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극인 ‘여성국극’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여성국극은 오직 여성만이 배우로 참여하는 무대극으로, 남장을 한 여성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극입니다. 때문에, 남장여성배우의 인기는 곧 여성국극의 인기를 몰고 왔지요. 국극을 쫓는 팬들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남장배우와 가상결혼식을 올린 팬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남장의 수준은 분장 뿐 아니라, 목소리, 몸짓에서도 나타납니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본다고 하듯, 여성 안에 숨어있는 남성성을 마주하는 이들은 이 속에서 어떤 합일 또는 통쾌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은 느낌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사실 이런 퀴어적인 코드는 현대에 더욱 익숙한 것인데, 1950년대에 이미 유행같이 번진 적이 있단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국극배우들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당시 시행된 전통문화 보존 정책에서 여성국극이 배제됐기 때문이지요. 의도적으로요. 여성국극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故조금앵 선생님의 말이 맴돕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그 꿈을 못 이룰 것 같다.’

     

    <왕자가 된 소녀들> GT

    Q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A 어느 날, 아는 분께서 50년대 여성국극 배우들의 옛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요즘엔 남장여배우도 많이 오지만, 그 옛날에 이런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하니 다소 충격이었죠. 먼저는 제가 대학생활을 했던 90년대 중·후반은 성정치와 여성주의 문화 활동이 많은 시절이었는데, 저 또한 이런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제 고민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영희야 놀자’라는 집단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2007년부터 배우 분들을 찾아뵈며, 다큐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Q 다큐의 특성상, 인터뷰이를 대상화해야하는 부분이 있는데 잘 진행하신 것 같아요.

    A 처음 뵀을 땐, 그분들께서 저희를 웃으면서 맞아주셨는데 속내를 보여주시진 않으셨어요. 저희들을 그냥 왔다가는 뜨내기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1, 2년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저희들이 진정 여성국극에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아시고 가족처럼 대해주셨어요. 다큐작업은 다른데서 시간이 걸리기보다는 인터뷰이와의 관계를 맺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인 것 같아요.

    Q 여성국극 왜 나타났고, 왜 사라지게 된것인가요?

    A 여성국극은 1948년에 처음 시작됐는데, 그 시작에는 여러 요인들이 결합돼 있어요. 실력있는 여류명창들은 당시 기생을 길러내는 곳에서 뽑혀온 사람들이에요. 예술가로서는 뛰어났지만 천대받는 직업일 수밖에 없었죠. 남성보다 훨씬 활동을 많이 하는데도 여성명창들이 무시를 받다보니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성국악동호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올라간 첫 작품이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화>에요. 이렇게 올린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니 작품이 계속 만들어졌지요. 현재 명동예술극장이 있는 자리가 예전에는 국립극장이었는데, 이 국립극장에서 만원사례를 일으킨 적은 여성국극이 유일무의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때문에 원래 있던 창극은 여성국극에 밀려 설자리를 잃을 정도였죠. 당시 남성 명창들의 회고록을 보면 여성국극단의 인기로 인해 극장을 빼앗긴 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1950년대 전국적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린 여성국극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이유는 한국 영화의 부흥 때문이라고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는 한국 영화 전성기 였습니다. 당시에는 극장과 영화관의 구분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무대예술보다는 영화관객이 많아 공연들이 자리를 잡기 어려웠지요. 여성국극 뿐 아니라 다른 악극, 연극 등 모든 무대예술 자체가 60년대에 들어서는 전반적으로 쇠퇴기를 맞게됩니다. 여성국극 자체도 그 레파토리가 반복되다보니 영화에 밀릴 수 밖에 없었고요. 전통문화예술이 이렇게 위기를 맞게 되니, 국가에서는 이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보호정책들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외려 여성국극에 예술도 아니고 전통도 아니라는 딱지를 붙였지요. 국악을 기형적으로 망친 것이라면서요. 때문에 그 뒤로는 여성국극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별로 남지 않게 됐습니다.

    Q 일본의 다카라츠카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다카라츠카는 여성국극과는 태생자체가 다릅니다. 일본철도회사에서 그 지방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다카라츠카라는 문화상품을 만든 것이지요. 다카라츠카 전용극장, 학교를 만들어 매년 배우를 배출하고 그 배우를 무대에 세우지요. 규율에 묶였있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체계화 된 만큼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여성국극은 자생적으로 생긴것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문화라고 생각해요. 다만 누군가가 집중시켜 부흥시키려한 시도는 없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안타깝지요. 그렇지만 배우분들이 어르신이 돼서 까지도 활동을 하는 게 창극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해요. 체계없이 우후죽순인 것이 여성국극의 치명적이 부분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롭고 대중들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요? 다카라츠카는 딱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김혜정 감독은 끝으로, 여성국극 배우분들에 대한 존경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한 때였고 그 이후 죽 쇠퇴기를 내려온 셈인데도, 어르신들께서 지금까지 무대 위에 선다는 그 자체에 큰 감동을 느끼신다는 김 감독님. 오래 시간이 지나도 열정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경험이 일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뉴미디어루키 최한나